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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 사조 명화

메두사의 뗏목

by 2mokpo 2022. 10. 7.

메두사의 뗏목은 당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이 그림이 화제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극적인 상황이나 미술사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당연히 이 끔찍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해했다. 그 배경에는 부르봉 왕가의 부패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유럽 강대국들은 식민지 확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식민지는 막대한 부를 안겨 주는, 한마디로 돈 되는사업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고위 관료에게 뇌물을 먹이고 식민지 개척에 참여하고자 했다. 메두사호 사건도 이러한 부패의 고리가 얽혀서 생긴 일이었다. 25년간 배를 탄 적이 없는 어느 퇴역 군인이 뇌물을 주고 부르봉 왕가의 신임을 얻어 식민지로 향하는 군함의 함장 자리를 차지했다. 이 선장은 배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무능함 때문에, 누구나 알고 있고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는 암초에 걸려 배가 난파하게 된 것이었다.

 

 

부정과 비리로 인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우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더 나아가 난파 이후의 과정이 분노를 몇 배는 더 증폭시킨다. 사태의 전개 과정은 난파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조차 신분과 부()가 결정한다는 것을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 준다. 배에 마련된 구명보트는 선장과 고급 장교, 귀족, 신흥 부르주아지 등 신분이 꽤 있는 사람들만 탈 수 있었고 이들은 무사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별 볼일 없는 하급 선원들이나 새로운 땅에서 새 삶을 살아 보겠다고 나선 서민들은 뗏목으로 내몰리고 죽음에 이르렀다. 그나마 원래는 뗏목을 구명정에 밧줄로 이어 해안까지 끌고 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선장은 뗏목에 연결된 밧줄을 끊어 버리고 도망쳤다.

 

흔히 유럽의 신사도 정신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많다. 위급한 상황에서 아이들과 여인 먼저 구하는 전통 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철저하게 신분과 부를 전제로 한다. 지배적인 신분과 부를 획득한 집단 내에서의 문제이다. 가난한 이들은 아예 처음부터 배제의 대상이 된다. 아니 아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취급조차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