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중에서----프란시스코 고야

by 2mokpo 2011. 4. 6.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그림을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보지 못한다.

괴물과 광기, 참혹과 전율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단 한편의 나체 그림 ‘나체의 마야’ 는 그에게 외설 작가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래서 그는 고약한 작가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고야는 스페인 북부 사라고사 근처의 후엔데토도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회 제단 등을 금으로 도금하는 직공이었는데 배우지 못해 유언서도 작성하지 못했다. 고야는

열 세 살에 데생을 배워 그림과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왕립 미술아카데미 선발 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으니 천재는 아니었다.

 

그는 고향 선배인 궁정화가 바이에와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그를 통해 당대 최고의 화가 멩스와 만나면서 轉機를 맞는다.

멩스는 당시 석조건물 벽을 장식하던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인 칼톤 그리기 작업을 알선해주었고

고야는 그 일로 이름을 떨치더니 마흔 셋에 궁정화가가 된다.

 

그는 모델을 한번만 보고서도 완벽하게 그려낼 정도로 최고의 초상화가가 돼 있었다.

고야는 나이가 들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해 60대에 절정을 이룬다.

그는 조국 스페인이 갈수록 반동화하자

죽음을 앞둔 여든에 프랑스 보르도로 망명,

쓸쓸히 죽지만 망명 직전까지는 궁정화가로 일했다.

안정된 수입 때문이었다.

 

궁정화가가 될 당시 이미 계몽주의에 흠뻑 취해있던

그는 직업으로 보면 어용이 분명했지만 그림에 비판정신을 듬뿍 담아냈다.

직접적인 계기는 없었다. 정치 결사체에서 활동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 혁명에 공감하던 스

페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눈을 떴을 뿐이다.

 

고야는 평생 1,870점이라는 방대한 그림을 남겼는데 당대 현실을 다룬 것만도 900점에 이른다.

1797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동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는

마녀와 악마에 대한 미신에 사로잡힌 스페인의 풍조나,

귀족과 성직자의 타락상을 고발한다. 그들을

당나귀와 괴물로 표현하고 그런 당나귀나 괴물을 짊어지고 비틀거리는 민중의 고통을 묘사했으며

“주둥이만 까진” 지식인과 의사들도 함께 비난했다.

 

그러나 결국은 조국을 떠나 망명지인 프랑스 보르도에서

객사할 수 밖에 없었던 고야는 82년의 긴 생애 동안,

결코 시들지 않는 예술혼으로 다채로운 기법을 구사하여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수없이 그려냈다.

 

윗 그림은 고야의 그림 중에서 가장 많이 소개되고 인구에 회자되는 그림 중의 하나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스페인을 점령한 후부터

영국군 등에 의해 패퇴하여 물러나기까지

참 많은 살육과 처형이 이루어졌다.

특별히 죽을 이유가 있어서 죽은 죽음은 거의 없었다.

그림에서 총을 쏘는 군인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각진 모자의 느낌처럼

사람 죽이는 것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있다.

 

반면에 죽는 사람들은 내가 왜 죽어야지 하거나,

죽일 테면 죽여!

하거나 그저 겁먹고 울거나 값없는 죽음과 맞닥뜨린 인간의 절망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전쟁의 비인간성을 그렸다는 의미에서

자주 등장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군부독재시절에,

피카소의 <한반도의 학살>과 함께 들여와 전시하는 것을 금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는 그림이다.

 

고야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전의 겨울 그림이

따듯한 난로가나 크리스마스의 가족, 사냥하는 모습 등으로 밝게 그려진데 비해,

고야의 겨울은

그야말로 북풍한설 살을 에는 삭풍이 부는 겨울이다.

바로 당시를 살던 힘없는 민초들의 삶 자체다.

그 추운 겨울에 힘겨운 행보를 해야 하는

민초들의 얼굴에서

고통스런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나귀 등에 실린 죽은 돼지가 차라리 행복해 보인다.

상반신을 가린 담요는 바람에

찢겨질듯 뒤로 나부끼고

그 세찬 바람에 눈조차 뜨기 힘들다.

눈보라에 마냥 신난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냥개뿐이다.

 

 

고야를 수석 궁정화가로 임명한

카를로스 4세 왕가의 가족 초상화다.

고야는 비록 궁전화가로 그림을 그렸지만

왕이나 귀족의 비위를 맞추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림에서 고야는

왕실의 여자들을 황금비늘에 덮인 것처럼 번들거리는 모습으로,

국왕은 훈장과 휘장이 치렁치렁 달린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모습으로 그려놓고

얼굴은 우아한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왕족다운 위엄이나

기상이 보이지 않는

약간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그려놓았다.

 

바로 그 뒤에서 그들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음으로서

그들을 경멸 혹은 조롱하는 듯한

속내를 발짝 비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