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소모품으로 기능하는 여성누드에서 과감한 일탈을 시도한 작가인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
그녀의 그림은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도록 감상자를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가슴을 가르고 몸을 관통하며 솟아오른 이오니아식 기둥이 조각조각 부서지고
몸에는 못들이 화살처럼 박혀있으며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척추환자용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다.
피 흘리고 고통 받는 여성누드를 담은 그녀의 작품은 더 이상 남성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그림이 아니다.
프리다는 또 서구 미술계에서 거의 다루어진 바가 없는 출산·유산·낙태·월경과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리는 등 터부를 깨뜨리기도 했다.
멕시코 벽화운동의 선구자이자 그녀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가 "미술사를 살펴볼 때,
그녀는 오로지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반적이면서 동시에 특수한 주제를,
절대적이고도 비교할 수 없는 솔직함으로 다룬 첫번째 여인이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프리다 칼로 <부서진 척추> ,1944
1930년 프리다는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낙태를 해야했고,
이어 가진 아이도 1932년에 유산했다.
프리다는 유산의 충격을 그림으로 그렸다.
프리다의 아랫배 쪽 하얀 침대 시트는 피에 흥건히 젖어있으며 배는 임신 때문에 아직도 약간 불러있다.
골반 주위의 피바다 위로 뻗은 리본은 탯줄이 되어 자궁에 있는 자세의 거대한 남자 태아 배꼽에 묶여있다.
이 태아는 유산으로 잃은 아기다.
프리다의 누드는 남성의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돌리게 하고 있다.
칼로는 앞서말한 금기를 무시하고 자신의 모습을 일상적이지 않은 방법,
아니 충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그녀는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미술계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리다 칼로 <헨리 포드 병원>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