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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중에서--쉬잔 발라통

by 2mokpo 2010. 11. 5.

 

▲ 수잔 발라동 자화상, 1883

이 여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체를 내어놓고도 차분하지만 당당하게 관찰자를 쳐다보고 있다.

흔히 벗은 여체를 그린 그림 속 여성들은 꿈꾸듯 애매한 눈빛으로 관찰자를 사선으로 비껴보곤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그림 속 여성은 자신이 자기 몸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1865~1938).

그리고 그림 속의 여인도 발라동이다.

그녀는 이 그림에서 자신을 전혀 예쁘게 그리지 않았다.

특히나 이 때 그녀는 방금 아이를 낳은 상태였다고 한다.

 

어느 누가 방금 분만한 여인의 몸을 보고 싶어 하겠는가.

이는 남성에게 어머니의 몸이지 성욕의 대상인 여성의 몸은 아니다 .

따라서 이 그림에서 발라동이 표현한 자신의 몸은 남성들의 눈길을 의식하는 <에로틱한 제재>로서 기능을 표현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가 남성화가들의 성욕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누드화 속에 나오는,

 바로 그 모델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그림을 그려낸 그녀가 더 놀랍게 여겨진다.

풍만하고 아름답고 유혹적이고 무방비한 모습으로 다소곳이 남성 화가들의 시선을 버텨낸 그림 속의 벌거벗은 여인이,

그림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을 그리기 시작한 것 자체가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

 

가난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세탁부에서 식당 종업원,

서커스 곡예사로 전전하다가 몽마르트르 거리에서 화가들을 만나 직업모델이 되었다.

르누아르, 로트레크, 샤반, 드가 등 기라성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델이 역할을 바꿔 스스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흔하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엄청난 내면적 독립성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여성은 영감을 주는 '객체'였고,

남성은 창조하는 '주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라동은 예술가로서 재능과 열정이 있었음에도 모델인 그녀가 여성화가로서 인정받기까지는 힘든 투쟁을 거쳐야만 했다.

 

그녀를 키운 건, 팔할이 그녀 자신이었다.

체계적인 그림 수업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대신 그녀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어깨 너머로 데생을 배웠다.

자신의 선을 찾기 위해

그리고 사물의 핵심을 읽어내는 힘을 기르기 위해,

그녀는 십여 년을 숨어서 혼자 공부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게 확신이 선 뒤 그림을 공개했을 때,

세상은 기존 남성화가들의 그림들과 전혀다른 초상화와 누드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