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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한국화가)

윤두서 ‘진단타려도’

by 2mokpo 2024. 2. 15.

윤두서 진단타려도는 나귀에서 떨어지는 진단 선생의 옛 고사를 담고 있다. 1715, 비단에 채색, 110.9x69.1cm

 

오는 410일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정치판이 개판(?) 싸움인 면도 없지 않으나 그 결과가 민생과 직결되는 것 또한 선거인지라 출마자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선거를 앞두고 윤선도의 진단타려도가 생각난다.

진단(872~989)이라는 인물은 난세에 혀 차며 벼슬길을 등진 채 수상학과 관상학을 연구했으며 복식호흡과 단식으로 신선술을 연마해 118세까지 살았다고 전하는 도인이다. 정사(正史)에 기록된 실존인물이지만 10년이 멀다 하고 왕조가 바뀌고 크고 작은 나라들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와중에, 정치인들은 세상 이치를 잘 읽는 진단에게 끝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이를 피해 다니던 진단은 정중한 고사의 뜻에서 짧게는 수십 일, 길게는 백 일 이상 잠을 잤다고 한다.

 

윤두서 진단타려도는 요즘으로 치면 한 컷 풍자만화 같은 분위기다.

배경지식 없이 그림만 보면 어떤 멍청한 선비가 졸다가 나귀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듯하다. 평소에 남들에게 체통을 세우고 얌전을 떨다가 어느 날 나귀에서 떨어져 채신없이 구는 모습을 꼬집은 장면처럼 보기 쉽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나귀에서 떨어지는 선비가 낭패하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아니다. 만약 양반의 위선적 행태에 대한 비판적 풍자를 목적으로 한 그림이라면 얼굴이 일그러져야 마땅하건만 오히려 세상 더 즐거울 게 없다는 듯이 활짝 웃는다. 정작 호들갑을 떠는 것은 화들짝 놀라 보따리도 내팽개치고 상전에게 달려가는 시동이다. 일단 집안 배경과 넉넉한 재산 덕에 산천을 돌며 노는 데 열중하는 한량은 아니다. 시동이 던져 놓은 보따리를 보면 책과 두루마리가 가득하다. 얼치기 양반이 아니라 학문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선비라는 점을 보여준다. 평상복 차림으로 한적한 산길을 시동 한 명 데리고 가던 중이어서 관직에 진출한 관리는 아니다. 어떤 사유가 있어서 초야에 묻혀 사는 학식 있는 선비이리라. 여기까지가 그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나머지는 제목의 '진단'이라는 데서 찾아야 한다. 진단은 중국 당나라 말에 태어나 송나라 초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뛰어난 학식을 지녔으면서도 입신양명을 거부하고 산속에 은거하며 살았다. 그의 인생동안 다섯 왕조의 흥망성쇠를 보았는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다고 한다. 모두가 패도 정치를 일삼으며 분란이나 전쟁에 몰두하느라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는 데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단이 나귀를 타고 가다가 행인에게서 세상이 바뀌어 송태조 조광윤이 새롭게 나라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천하가 이제부터 안정되리라!"라며 기쁨을 만끽한다. 이제 천하가 궁핍과 전쟁에서 벗어나 생활의 안정과 평화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 찼기 때문이다. 흥분하여 박수를 치며 좋아하다가 그만 나귀에서 떨어진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나귀에서 떨어져 뒹굴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진단의 판단과 기대대로 조광윤은 덕치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너그러운 군주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자신에 반대하는 인물이나 세력을 죽이거나 제거하기보다는 공존을 택한다. 만약 직언을 하는 관리나 지식인이 있어도 귀를 기울였던 군주다. 조광윤이 진단의 재주를 익히 들은 바가 있어 여러 번 조서를 내려 만나려 있으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산속 은둔 생활을 이어간다.

출처 : 박흥순 지음 옛 그림 인문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