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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 사조 명화/바로크

렘브란트 하르멘스존 반 레인, Rembrandt

by 2mokpo 2023. 2. 13.

렘브란트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네덜란드어: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715~ 1669104)은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이다. 빛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그는 일반적으로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특히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이기도 하다. 예술 분야에서 그는 역사가들이 소위 '네덜란드의 황금 시대'라고 부르는 시대를 불러오는데 기여하였다.

렘브란트의 동시대의 초상화, 자화상, 성경 장면의 삽화는 그의 가장 위대한 창조적 업적으로 여겨진다.

1632년 외과의사 조합의 의뢰로 첫 번째 집단 초상화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완성하면서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가 되었다. 튈프 박사의 공개 해부 강연을 그린 이 불멸의 명작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이 인물들의 개성을 담아내는 데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돌아온 탕자, 264.2x205.1cm, 1668~1669

성서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돌아온 탕자>는 렘브란트가 가장 마지막으로 그린 역사화로 알려져 있다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소재로 삼았다. 성서에 따르면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요청했고, 그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용서를 구한다. 그새 늙어버린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나무라는 대신 좋은 옷과 신발, 가락지를 끼워주라 말하며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인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는 집으로 다시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에서 돌아온 아들의 시선과 감상자의 시선을 일치시킨다. 감상자가 초라한 모습의 아들을 자애로운 눈빛과 손길로 맞아주는 아버지를 아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다. 누더기 옷과 다 해진 신발을 신고 늙은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들의 얼굴을 정확히 볼 수는 없지만 뒷모습만으로도 그가 깊은 회한에 잠겼음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시커먼 발바닥을 드러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아들의 모습은 오갈 데 없는 그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림 속 아버지가 두르고 있는 붉은 망토는 관용과 용서를 상징한다. 이에 반해 돌아온 탕자를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들의 시선은 냉정하다. 오른 편에 서 있는 이는 탕자의 형으로 탕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이나 제스처와 상반된 모양을 하고 있다. 탕자의 형의 뒤편으로 보이는 한 구경꾼은 가슴을 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여성으로 추정되는 다른 구경꾼은 관망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야경, ,1640년대 ,유화 453.5x379.5cm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 

렘브란트의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원래 이름은  프란스 반닉 코크 대장 휘하의 2지구 민병대라는 이름이었다. 프란스 할스의 그림처럼 특정 민병대를 그린 단체 초상화이다. 위의 그림으로 보면 아주 명백해 보인다. 그런데 이 그림은 오랜동안 그냥 야경, 또는 야경단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대대적으로 청소하고 복원을 했더니 여러겹으로 칠해져 있던 바니시와 먼지 사이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단체 초상화였다.

< 십자가에서 내리심 >

화려한 색채보다는 신교도들의 검소함에 걸맞은 매혹적인 빚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힘없이 무너진 예수의 모습은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죽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신비한 빛이 주인공인 예수와 그를 싸는 깨끗한 세마포, 그리고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으며, 어둠 속의 마리아는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목욕하는 밧세바구약성경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이다. 다윗 왕은 부하 장수의 아내였던 밧세바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갈등하던 그녀는 결국 다윗을 따르기로 한다. 다윗은 그녀의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녀와 동침하여 아들 솔로몬을 낳는다. 아름다운 빛이 벗은 그녀의 몸을 환히 밝힌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남아 있는 여분의 빛이 그 품격을 잃지 않고 묘하게 매력을 뿜어낸다. 렘브란트는 바로크 시대의 화가이지만 이탈리아의 화가들, 혹은 플랑드르의 루벤스처럼 인물을 과장되게 미화시키거나 움직임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처연한 빛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그림 속 모델은 그의 세 번째 여자인 헨드리케 스토펠스였고, 그림을 완성하던 해에 교회 재판을 받았다.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 코르넬리아라는 딸을 두었다.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

사스키아와의 결혼에 대한 렘브란트의 기쁨을 솔직하게 표현한 그림이다.

그는 귀족들이나 입을 수 있는 호사스러운 옷을 입고 잇는데, 공작 털로 장식한 모자와 허리에 찬 칼은의 신분상승을 말해 준다. 표정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돈과 권력을 지닌 시장의 딸을 아내로 얻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사스키아는 남편의 다소 저속한 웃음 앞에 조금도 당황스러워하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는 남편의 무릎에 앉아 고개를 돌리며 관객을 쳐다보고 있다. 렘브란트의 다소 저속하게 보이는 웃음과는 달리 인 사스키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남편의 무릎에 앉아 개를 돌려 관객을 쳐다보고 있다. 21세에 렘브란트와 결혼한 사스키아는 아들 하나와 둘을 연거푸 잃고, 아버지마저 잃는 불행을 겪은 뒤 29세에 요절했다.

갈릴리 바다의 폭풍 속의 그리스도는 네덜란드 황금기 화가 렘브란트가 1633년 캔버스에 유화.  이전에는 보스턴 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에있었지만 1990년에 도난당하여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이 그림은 특히 마가복음 4장 에설명된 대로 갈릴리 바다의 폭풍 을] 렘브란트의 유일한 바다 풍경입니다. 수직 형식의 이 그림은 고기잡이 배를 다시 통제하기 위해 심한 폭풍에 맞서 미친 듯이 고군분투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줍니다. 거대한 파도가 활을 치고 돛을 찢습니다. 제자 중 한 명이 옆으로 토하는 것이 보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자화상이다. 오른쪽에 묘사된 그리스도만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발람의 당나귀〉
감옥에 있는 성 베드로(1631)
무덤에 있는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1638)
선한 사마리아인(1630)
플로라처럼 분장한 사스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