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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 사조 명화/바로크

카라바조 - Caravaggio

by 2mokpo 2023. 1. 24.

바로크 시대 미술가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이고

카라바조는 태어난 마을의 이름이다.

출생 1571년경 ~ 사망 16100718

국적 이탈리아

대표작 바쿠스, 과일바구니를 든 소년, 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체스코, 세례 요한의 참수

빛을 이용한 극적인 구성과 사실주의 표현 기법으로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미술 탄생에 기여했으며,

그는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혁신가로 일컬어진다.

카라바조는 르네상스의 관념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빛과 그림자의 대비와 극적 구성,

사실주의적 표현 기법으로 르네상스 이후 근대 사실주의 회화 기법을 탄생시켰다고 평가받는다.

동시대를 산 화가 푸생의 말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배경을 어둡게 하고 인물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극적인 대비가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양미술사에서 발췌

352 카라바조, <의심하는 토마>, 1602-3년경. 캔버스에 유채, 107x146cm,

 

카라바조에게는 추한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경멸할 만한 약점으로 보였다.

그가 원하는 것은 진실, 즉 그가 본 그대로의 진실이었다.

그는 고전적인 규범을 좋아하지 않았고 또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신통치 않게 생각했다.()

그는 이와 같이 쏟아지는 비난을 받은 최초의 화가들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또한 그의 예술관이 비평가들에 의해 하나의 문구로 집약되었던 첫 번째 화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를 자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집필중인 예로니모 성인, 1605-06 #유화 157x112cm #보르게세미술관 #로마 #바로크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달마티아 출신의 학자이자, 이 때문에 기독교의 4대 교부 가운데 한사람으로 여겨지며, 성인으로 시성이 된 사람이다. 4세기 사람이다. 때문에 예로니모 성인은 책을 보면서 책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

카라바조 또한 예로니모 성인 그림을 여러번 그렸다. 위의 것은 후원자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주문으로 로마에서 그린 것으로 되어 있다.

제롬 성인을 상징하는 심볼 가운데 사자나, , 주교 모자 등 외에 해골이 자주 등장한다. 해골은 죽음을 의미하고, 기독교에서 육체의 죽음은 부활을 통해 좀 더 높은 수준의 사색을 할 수 있는 사색의 기초를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다른 것을 의미할 때도 있지만, 예로니모 성인의 경우는 그렇다고 한다.

예수의 체포 또는 그리스도의 체포, 1602 #유화 169.5x133.5cm #National_Gallery_of_Ireland

 

이 그림은 그리스도의 체포 순간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에는 모두 7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예수께서는 왼쪽에서 두번째에 눈을 감고 채념 했다는 표정을 하고 계신다. 그 옆에서 예수를 안고 방금 키스를 마친 대머리는 예수를 배신한 유다이다. 키스를 했지만, 사실 로마 병사들에게 누가 예수이고 누가 체포되어야 하는지를 알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온 병사 세 명이 그려져 있고, 그중 맨 오른쪽은 투구만 살짝 보인다. 이들은 로마 갑옷과 투구가 아닌 최신식 이태리 갑옷과 투구를 입고 있다. 맨 앞에 예수를 체포하려는 군인의 갑옷은 그야말로 번쩍번쩍하다. 예수 뒤로 맨 왼쪽에 팔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 사람은 사도 요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날리고 있는 그의 옷을 로마병사가 손으로 잡고 있다. 도망가는데도 실패를 하고 있는 셈이다. 카라바조가 요한을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등장인물은 병사들 사이에 등불을 들고 있는 콧수염 사나이이다. 이 사람의 얼굴은 카라바조 자신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인물은 베드로의 역할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예수를 모른다고 부정하면서 예수를 제일 먼저 배신했지만, 예수라는 등불을 전세계로 비춘 사람이 되겠다. 어쩌면 사도인 요한도 도망가고 있는데, 카라바조 자신은 예수에게 다가서고 있는 모습을 그리면서 자신이 사도보다 더 신심이 깊다고 주장한 것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 그림은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수십개의 사본이 제작되었다. 지금은 그 중 12점이 남아 전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을 베이는 세례요한, 1608 -유화 520x361cm -성요한대성당 -발레타 -바로크

 

위 그림은 카라바조의 그림 가운데서도 걸작 중 걸작으로 꼽히는 그림이지만, 그외에도 두가지 면에서 특이한 그림이다. 우선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 가운데 가장 큰 그림이다. 가로 폭이 5미터가 넘는 큰 그림이다. 그의 다른 그림 중에는 4미터가 넘는 다른 그림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카라바조의 사인이 들어가 있는 유일한 그림이다. 왜 카라바조가 안 하던 그림위의 사인을 이 그림에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다.

이 그림에서는 세례요한의 목이 참수되는 바로 그 장면을 노렸다. 그리고 아주 자극적인 명작이 탄생했다. 이 그림은 큰 화폭에 절반정도만을 세례요한의 참수 장면에 사용하고 있다. 감옥의 벽같아 보이는 곳에 감옥창을 통해 참수장면을 보고 있는 구경꾼 두명을 포함한 배경을 그려넣는데 나머지 화폭을 활용했다. 덕분에 나름의 여백의 미가 생기고, 전체 구도가 오프밸런스 되면서 극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망나니는 큰 칼로 세례 요한의 목을 벤 후, 큰 칼을 내려놓고 마지막 작업을 위해 허리춤의 단검으로 손을 향하고 있다. 다른 한손은 세례요한의 반쯤 잘린 목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다. 살로메 또는 살로메의 하녀로 보이는 여인은 금쟁반을 들고 요한의 머리가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그 옆의 나이든 여인은 끔찍한 광경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간수로 보이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금쟁반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에 목을 올려놓으라는 지시를 하고 있는 듯하다.

카라바조 엠마오의 식사제작시기 1601

예수는 부활한 뒤, 엠마오라는 마을을 향해 걸으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제자 두 사람에게 슬며시 나타나 그 일에 대해 묻는다. 두 사람은 그가 예수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며칠 전 있었던 십자가 처형과 무덤에서 시신이 사라진 이야기를 설명한다. 이들은 엠마오에 도착하자 예수에게 날이 저물었으니 함께 식사하고 묵을 것을 청했다. 식탁 앞에 앉은 예수는 빵을 들어 찬미한 뒤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성찬식과도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두 사람은 그때서야 그가 부활한 예수임을 알아차린다.

그림 속 등장인물은 남루한 옷을 걸친 채 막일하는 사내처럼 그려진 제자들과 동네에서 자주 보던 젊은 총각처럼 그려진 예수를 보며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카라바조를 흔히 사실주의의 대가라고 일컫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들 성인을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로 묘사했다는 데 있다.

강렬한 명암의 대비 속에서 예수는 자신의 그림자를 마치 후광처럼 드리우고 앉아 식탁에서 축성을 하고 있다. 뒤늦게 그의 정체를 깨달은 제자들의 당혹스러운 표정과 자세 역시 치밀하게 사실적이다. 왼쪽 의자의 제자는 놀라움을 이기지 못해 막 몸을 일으킬 듯하다. 오른쪽 제자는 두 팔을 쭉 펼쳐 보이고 있다

식탁의 빵과 포도는 성찬식에서 말하는 예수의 살과 피로서의 빵과 포도주를 연상시킨다. 특히 식탁 끝에 걸쳐 있어 떨어질 듯 말 듯한 과일 바구니는 그림 전체의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바구니 속 석류는 종교화에서는 주로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상징하며, 썩은 사과와 색이 변한 화과는 인류의 원죄를 뜻한다.

 

카라바조, <의심하는 토마>, 1602-3년경. 캔버스에 유채, 107x146cm, 포츠담 장수시 궁 자선 시설

2천 년 전,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아주 현대적인 인물이 있었다. 도마(Thomas).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마침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나중에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가능한 것이냐고 의심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아 실증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여기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 복음서 중에서도 요한복음만이 기록하고 있는 이 독특한 장면을 400년 전 카라바조가 그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카라바조가 그린 제자들의 행색은 지저분하고 꾀죄죄하다. 머리는 감은 지 며칠은 지났고 이마에는 주름이 잔뜩 져 있다. 도마의 옷 어깻죽지는 해져 벌어졌고, 손가락과 손톱에는 때가 꼬질꼬질 끼어 있다.

제자들은 진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맞는지 온 감각을 동원하여 집중해서 본다. 한 순간도 딴청 피우지 않는다. 진지하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본 다음에야 믿을 수 있다는 자세다. 사실은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활하신 주님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끔찍하고 잔인한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님의 옆구리 상처에 직접 손을 넣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그림은 없었다!" 이 그림 보고 있으면 내 옆구리가 괜히 움찔해진다.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만져보고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셨지만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고 아파라 하시는 것 같다. 손을 집어넣은 도마의 손목을 잡고 적극적으로 집어 넣어보라고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손목을 저지하면서 아프니 그만하라고 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집요하게 확인하고자 하는 도마의 집중적인 표정과 하라고는 했지만 곤혹스러운 주님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다 만져본 다음에 주님은 도마와 그 후예인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