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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인물지(서평)

by 2mokpo 2013. 3. 10.

 『인물지』는 조조가 세운 위나라의 명신인 유소가 쓴 인사교과서이다. 조조는 허명만 갖춘 인사들의 폐단을 직시하고 ‘능력이 있으면 도덕적인 하자가 있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인재를 모아 위나라의 토대를 쌓았다. 유소는 조조의 능력주의를 포괄하면서 그보다 더 체계적인 체제를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바로 『인물지』이다. 『인물지』는 『육도삼략』과 함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인(知人)과 용인(用人)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군주와 신하라는 이 두 입장에서 인재의 재질과 성정, 그 인물을 식별하는 법, 인사권자의 자질, 그리고 인재 자신이 경계해야 할 일까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상서尙書』에 “사람을 아는 밝은 지혜가 있어야 백관을 관리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지인선임(知人善任), 즉 사람을 알아보는 일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은 군주들이 지혜의 핵심으로 삼았던 개념이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자신이 천하를 얻은 이유를 밝히면서 “나는 장량, 소하, 한신 이라는 걸출한 인재를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항우는 범증이라는 인재가 있었으나 그를 쓰지 못해 결국 패했다”고 했다. 그러나 인재를 알아보고(知人) 그런 인재를 쓰는 일(用人)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갈공명의 ‘읍참마속’(泣斬馬謖) 고사는 인재를 알아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유비가 죽기 전 제갈공명을 불러 마속은 언과기실(言過其實) 하니 중용해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 마속이 하는 말이 그 실질을 넘는다는 것이다. 제갈공명은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마속을 신임하다 결국 전투에 패하고 마속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인물지』는 용인(用人)은 군주의 도이고, 행사(行事)는 신하의 도라는 전통적 제왕학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 군주와 신하의 재능은 다르다. 훌륭한 군주는 자신에게 잘 하느냐 잘 못하느냐 또는 자신과 친한지, 친하지 않은지로 사람을 쓰지 않으며, 그 일에 필요한 재능과 덕목이 무엇인지를 알고 쓴다. 군주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것을 재능으로 삼지만 신하는 수신하여 관직에 나가는 것을 재능으로 삼는다. 군주는 잘 듣는 것을 재능으로 삼지만 신하는 말을 잘하는 것을 재능으로 삼는다. 군주는 상벌을 적절하게 내리는 것을 재능으로 삼지만 신하는 일을 잘 실행하는 것을 재능으로 삼는다. 군주와 신하의 재능이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군주는 여러 인재들을 관할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사람의 재질을 크게 다섯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첫 번째가 다종의 덕을 모두 겸비한 겸덕(謙德)의 인재이며, 두 번째는 여러 재질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갖추어지지 않는 겸재(謙材)이며, 세 번째는 한 가지 재질만 두드러진 편재(偏材), 네 번째는 진짜가 아닌 재질을 가진 사이비인 의사(依似), 다섯 번째는 서로 상충되는 재질이 섞여 있는 간잡(間雜)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위 세 종류의 인재는 그 능력에 따라 쓰면 되지만 의사(依似)와 간잡(間雜) 같은 말류의 인재는 가려내야 한다.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인재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구비한 편재라고 할 수 있다. 유소는 편재를 12가지 성정으로 나누면서 올바른 인사를 위해서는 재질과 성정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인재를 배치할 것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유소는 ‘훌륭한 짐승은 나무를 택해서 보금자리를 짓고 훌륭한 신하는 군주를 택해 섬긴다’는 옛말을 인용하며 택군(擇君)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소학小學』에는 ‘임금과 신하는 의리로 맺어졌으므로, 남의 신하가 된 자는 세 번 간하여 듣지 않으면 그 의리가 떠나갈 수 있다’고 하였다. 후한 광무제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기여한 마원은 “지금 세상은 군주만 신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도 군주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강태공은 위수 강변에서 문왕을 선택했고, 제갈량은 융즁에서 유비를 선택했다. 당나라의 창업공신으로 재상을 지낸 방현령은 수나라가 멸망할 것을 예견하고, 과감히 수나라의 관직을 버리고 이세민에게 합류했다.
 
   인재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또 인재를 쓰는 군주에 따라 달랐다. 당태종 때의 명신인 위징은 난세에는 재주 있는 자를 찾지만, 평화 시에는 재주와 행실을 같이 찾는다고 하였다. 『인물지』에서는 진정한 인재란 자신을 낮추어 겸양하고 남과 다투지 않아 아름다운 명성을 이루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누구나 인간다운 사람을 좋아한다. 인간다운 사람이란 바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인간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 남의 한계도 인정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를 가까이 대한다. 우리는 주위에 사람은 많지만 정작 일을 시키려고 보면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쓸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몰라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재들의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인물지』는 진정한 인재를 식별할 수 있는 혜안을 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서평자  노우진(국회도서관 기획담당관,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 Information Studies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