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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중에서--요한 조퍼니

by 2mokpo 2010. 10. 30.

 

일찍이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최상의 여인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여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미술사에서 이름을 떨친 여성화가를 꼽아보자니 수를 헤아리는 손이 민망할 지경이다.

 

여성화가, 20세기 들어와서는 더러 있긴 하지만 그 이전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남녀를 차별하는 사회 분위기와 교육의 불평등을 꼽고 있다.

 

왕립 아카데미 여자 회원들은 어디에?

▲ 요한 조퍼니 <왕립아카데미 회원들>

 

위 그림을 보자.

요한 조퍼니는 1771~1772년에 걸쳐서 새로 설립된 왕립 아카데미를 축하하는 미술가들이

남성모델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모여있는 그룹초상화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을 그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림 속 회원들 중에 여성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1768년 영국 왕립 아카데미 설립단원 중에는 앙겔리카 카우프만과 메리 모저라는 두 명의 여성 미술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더욱 이상한 일이다.

요한 조퍼니는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에 그녀들을 분명히 그려넣었다. 어디 있을까?

 

답은 바로 모델들이 서있는 무대 뒤 벽에! 조퍼니는 이 두 여성 회원의 상반신 초상화를

그려넣는 것으로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을 '모두' 그려낸 것이다.

 

▲ 요한 조퍼니 그림 부분확대도 ⓒ 요한 조퍼니 요한 조퍼니

 

이 그림은 당시 여성화가들이 처해있던 어려움들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이 그림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술에 대한 논의 속에 두 여성 회원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16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아카데믹한 훈련과 표현의 기초가 되었던 누드 모델 연구에서 배제되었다.

 

정숙한 숙녀가 벌거벗은 남성의 몸을 그린다니!

만약 그렸다면 그들은 미심쩍은 윤리관을 가졌다고 의심받았을 것이다.

조퍼니의 그림은 왕립 아카데미 미술가들의 이상을 담은 것이기도 한데,

여기에서 카우프만과 모저는 미술작품의 생산자가 아닌 대상물로 표현되었다.

 

즉, 이 여성미술가들의 초상화는 남성 미술가들이 사색하고 영감을 얻는 대상이었던 부조 작품이나

석고상들과 나란히 놓여있다.

그들은 '재현물(representations)'이 된 것이다.

즉 미술사의 흐름에서 여성은 생산자라기보다는 재현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랬다. 옛 여성미술가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왠지 모를 어색함,

특히 인체 드로잉이 미숙했던 이유.

그녀들은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를 예로 들어보면 당시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그림솜씨뿐 아니라 고대 미술에 대한 지식과 함께 원근법,

 해부학 등 여러 학문에 정통해야 했다.

또 이 도시 저 도시를 찾아다니며 대가들의 미술기법도 익혀야 했다.

 

하지만 당시 여성은 그런 교육의 혜택이나 여행의 자유를 누릴 수가 없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19세기 말까지 여성은 나체를 모델로 하는 누드 수업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화가가 되기 위한 수련의 가장 궁극적 단계인 이 과정을 박탈한다는 것은 실제로 중요한 예술작품 창조의 가능성을 박탈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은 마치 의과 대학생들에게 인간의 몸을 해부할 기회를 주지 않거나

혹은 아예 그것을 살펴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과 같다.

남성 화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부학적 지식이 빈곤한 여성 미술가들은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서사적 주제를 다루지 못했다.

 

19세기 중엽까지 여성 화가의 주제는 초상·정물·풍속에 한정되었고,

인물화가 주류를 이루던 서양미술사의 중심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히려 당연했다.

 

출처 : 이유리,임승수지음 <세상을바꾼 예술작품들> 중에서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