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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야기/정원의 꽃과 나무 이야기

제비꽃

by 2mokpo 2010. 4. 23.

 

 

 

 

모양과 빛깔이 제비를 닮아서일까. 아니면 봄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와서일까.

 

이 꽃은 이른 봄 갓 부화된 병아리처럼 귀엽다고 하여 병아리꽃, 어린  잎은 나물로 먹기때문에 외나물이라고도 불렀다.

 

또 꽃 모양새가 씨름할 때 장수 같다고 하여 씨름꽃 또는 장수꽃(강원도), 그 외 봉기풀(함경도)이라고도 했으니

 

이런 이름은 제비 같은 이 꽃에게는 무례한(?) 이름이 아닐까.  

 

그런데 이 꽃은 이런 이름보다도 더 이질적이면서 엉뚱한 이름도 가지고 있다.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이 그렇다. 오랑캐는 옛날 두만강 근방에 살던 겨레들(특히 여진족)을 가리키지만 중화(中華)에 대해

 

주변에 살던 미개한 종족을 멸시하는  말로 사용되면서 부정적 어휘로 쓰인다. 오랑캐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조선의 각 고을에서 이 꽃이 필 때 북쪽의 오랑캐 무리들이 쳐들어왔다고 해서 붙었다는 설이요,

 

또 하나는 꽃모양이 머리태를 드린오랑캐의 뒷모습과 닮았다 하여 그렇다는 것이다.

 

뒤쪽 설과 관련된 시도 있다.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띠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 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백 년이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도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들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울어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이용악, 「오랑캐꽃」(1947) 

   

 

시인의 고향이 함북 경성이라 한다.

 

여진족(오랑캐)이  살던 곳이다.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다가 고려 때 윤관의 여진 정벌로  장정들은 전쟁터에서 대부분 죽고,

 

남은  사람들은 머리를 깎인 채 천민으로 전락하여 자기네들끼리만 결혼을 하면서  여러 대를 살았다.

 

식민  치하의 우리 겨레가 바로 여진족 신세 아닌가.

 

오랑캐꽃과 오랑캐를 동일시하여  우리네 비극적인 삶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를 읽노라면 제비꽃이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전혀 억울할  것이 없지 않을까.

 

피압박 민족의 설움을 형상화하였으니 오랑캐는 더 이상 멸시의 이름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