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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만연한 교육 비리가 교육감 선거 탓이라니

by 2mokpo 2010. 4. 9.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요즘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은 교육 비리 문제다. 사회 제도상 교육감이 선거로 되면서 그런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꼬리를 물고 나오는 교육계 비리의 주범이 교육감 직선제 때문이란 얘기로 들린다.

곪을 대로 곪은 교육 비리는 매관매직, 공사 입찰비리, 금품수수, 불법찬조금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겉으로 드러난 비리와 부정이 이 정도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동안 말을 안했을 뿐이지, 수십년 묵은 구조적 비리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방자치제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교육감 직선제는 2007년 2월 첫 실시된 이후 이제 두번째 선거를 맞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08년 7월 공정택 교육감이 첫 당선됐으니 민선 교육감은 불과 2~3년밖에 안된 걸음마 단계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새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했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공 교육감을 청와대로 불러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불행히도 공 전 교육감은 선거부정으로 당선무효됐고, 지금은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돼 있는 상태다. 그는 민선 직전에도 교육감을 4년간 지냈다. ‘비리 백화점’을 방불케 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온갖 비리는 대부분 그의 교육감 재직 중 벌어진 일들이다. 대통령은 교육 비리를 선거 제도 탓으로 돌리기에 앞서 한나라당이 사람을 잘못 고른 데 대해 먼저 고개를 숙였어야 할 일이다.

교육감 선거가 막대한 비용과 줄서기 관행으로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우려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교육감 선거의 폐해는 수많은 교육 비리 원인 중 하나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다. 고질적인 교육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경쟁 위주의 교육 정책도 자율형사립고 부정 입학, 입학사정관제 브로커, 일제고사 성적 조작 같은 비리와 부정을 낳는 토양이다. 이런 문제들을 뒤로 두고 수십년간 만연되어온 교육 비리를 단순히 교육감 선거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확한 진단도 아니요, 교육자치의 취지를 훼손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정치인 비리는 총선 때문이요, 대통령 측근 비리는 대통령 선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가. 막 시작한 민선 교육감의 착근(着根)을 지원하기는커녕 선거를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니 어이가 없다.

ⓒ 경향신문 2010.4.8 사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