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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한국화가)

사시장춘 - 신윤복(혜원)

by 2mokpo 2023. 1. 27.

원래 조선 회화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의 극치는 앵도화가 피어나는 봄날의 한낮,

한적한 후원 별당의 장지문이 굳게 닫혀있고, 댓돌위에는 가냘픈 여자의 분홍 비단신 한 켤레와 너그럽게 생긴 큼직한 사나이의 검은 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아무 설명도 별다른 수식도 필요가 없다.

그것으로써 있을 것은 다 있고, 될 일은 다 돼 있다는 것이다...

정사의 직접적인 표현이 청정 스러운 감각을 일으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뿐더러 감칠맛이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면, 춘정의 기미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보다 더 품위 있고 은근하고 함축 있는 방법은 또 없을 줄 안다.

말하자면 한국인의 격있는 에로티시즘은 결국 '은근'의 아름다움에 그 이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그림에 대한 최순우 선생의 해설----[사시장춘(四時長春)]을 한국적 춘의도의 으뜸으로 치고 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정작 탄복할 것은 그의 글 솜씨다. 굳이 낯 붉힐 설명 하나 없이 "있을 것은 다 있고, 될 일은 다 돼 있다" 는 표현으로 슬쩍 에누리하고 지나가는 그의 속셈, 이야말로 어떤 의뭉스러운 그림도 따라가지 못할 고수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그림이 그 사람이고 사람이 그 그림이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라 참말이다.

 

최순우 선생의 해설은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러나 호기심은 속인의 버리기 힘든 버릇 아니던가?

'있을 것'은 뭐고 '될 일'은 뭐란 말인가.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에 그칠지언정

사시장춘(四時長春)]에도 덧붙일 말들이 남았을 것 같아 자꾸 아쉬워진다.

-중략-

눈 똑바로 뜨고 못 볼 것이 두 가지 있으니, 하나가 추태요, 하나가 미태다.

어여쁜 자태를 무슨 배알로 직시하겠는가. 성긴 그림자로 살그머니 볼 나름이다.

하물며 남녀의 춘정을 표현하는 그림 에서랴...지킬 것 지켜가면서, 가릴 것 가려가면서, 버릴 것 버려가면서 그릴 때, 운치가 샘솟는 법이다.

음욕이 붓보다 앞서면 그림은 망친다.

--중략--

개숫물 먹고 먹물 트림할 순 없는 노릇이다. 배운 게 있고 든 게 있어야 춘정의 진경을 안다.

--중략--

마루 위의 신발을 보라여자의 신발은 수줍은 듯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그녀의 마음이 물들어서일까. 두근거리는 도화색이다. 눈여겨 볼 장면은 남자의 검은 갖신이다.

도색 곁에 놓인 흑심인가? 흐트러진 꼴로 보건데 후다닥 벗은 것이 틀림없다.

긴 치마로 오르기에는 제법 높아 뵈는 마루라서 남자는 먼저 여자를 부축해서 방안에 들였을 것이다.

그러고선 얼른 문을 닫고 들어갈 요량으로 조이는 신발을 채신 머리 없이 내 팽겨친 것이다.

그 일이 얼마나 급했을꼬... 남자 마음은 다 그렇다.

흥미롭고 안쓰럽기는 술병을 받쳐든 계집종이다.

엉거주춤 딱한 심사로 돌처럼 굳어버린 저 모습, 뫼시는 어른은 꽁꽁 닫힌 장지문 안에서 숨소리마저 죽인 듯한데,

자발없이 이 내 새가슴은 콩콩 뛰니, 들킬세라 숨어버릴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몸종은 고약한 봉변을 당한 꼴이 되어 버렸다.

작가는 재치를 발휘한다.

앞으로 쭉 내민 손과 뒤로 은근슬쩍 빠진 엉덩이가 그것이다.

계집아이의 곤혹스러움을 묘사하는데 이보다 능수는 쉽지 않다. 그 솜씨를 두고도 아이의 표정은 그리지 않았다.

그것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속담에 "나이 차서 미운 계집 없다" 하지 않았는가.

한창 때는 도화 빛이 돌기 마련이다. 그러나 몸종 품신이 아직 성의 단맛을 알 나이는 아니다.

연분홍 댕기마저 애잔해 보이는 그런 아이의 풋된 표정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그대는 변태다.

다만 한 줄기 홍조를 옆 얼굴에 살짝 칠한 것으로 작가는 붓을 거둔다.

손철주 지음 그림보는만큼 보인다 4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