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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사진기 메고 나들이

부석사

by 2mokpo 2014. 11. 11.

 

 

 

 

무량수전

 

무량수전 앞 석등

안양문

 

 

조사당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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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道場)이다.

“부석사를 찾은 김삿갓의 시”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김삿갓(1807~1863)은

부석사 무량수전 앞의 안양루에 올라

장쾌한 태백산맥의 경관을 내려다보며 다음의 시를 남겼다.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광경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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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