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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여행기-4(체코프라하)

by 2mokpo 2014. 6. 1.

체코 역사

5세기 말과 6세기 초 -슬라브인이 현 모라비아와 슬로바키아 지역에 정착
9세기 후반-기독교 전도사가 들어옴
9세기 ~1306 프르제미슬 왕조 기간동안 체코의 국력 점진적 신장
1346~1378 까렐4세 통치 하에 보헤미아 왕국의 최고 전성기
15세기 초-국가위기로 후스운동 유발
1526- 합스부르크 왕조가 보헤미아 왕조를 계승-다국적 왕조 형성
1620- 백산전투에서 보헤미아의 패배,합스부르크 왕조의 집권 지속
1918년 10월28일-체코 슬로바키아 독립 국가 형성
1939년 3월15일-1945년5월9일, 독일 점령
1948년2월 공산당 점거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 시작(2월 25일)
1968년 8월-바르샤바 조약국들에 의한 소비에트주도의 침공은 결국 "프라하의 봄"을 이끌어 냈고 공산당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함
1989 벨벹혁명(11월 17일)
1989 바츨라브 하벨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당선
1992 체코와 슬로바키아 국경선 확정
1993 체코와 슬로바키아 국가 분리
1989년11월 공산당 정권 몰락
1993년1월1일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에서 분리, 독립하여 체코 공화국 설립

 

프라하성에서 내려오면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 

 

 

카롤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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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교
강 서쪽의 왕성(王城)과 동쪽의 상인거주지를 잇는 다리

 보헤미아왕 카를 4세 때(1346∼1378)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카롤교라 한다.
다리 길이는 약 500m.

12세기에 이미 목제교가 같은 위치에 있었으나

강이 범람할 때 붕괴되어 12세기 중엽에 석재교로 대체 되었는데

이 석재교 또한 강물로 인해 붕괴되어

1357년 카를4세 때 다시 건축하여 1402년 완공되었다. 
16개의 기둥과 3개의 브릿지 타워가 있는데 보행자 전용 다리이다.
다리 전체가 공연장이고 갤러리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크 시대(18C)에 만들어진 30개의 조각상이 다리를 장식하고 있다

 

카롤교에서 

 

 

성 네포무츠키 조각상

 다리 중간쯤에 있는데 신부의 머리에 둥글게 별 다섯 개가 둘려 있다.

이것은 신부가 물에 던져진 후 다섯 개의 별이 떠올랐다고 해서  별 다섯 개로 형상화해 표현한 것이다.
신부는 당시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보헤미아 왕 바츨라프 4세(카를 4세의 아들) 에게 말하지 않아

왕에게 혀를 잘리고 돌에 묶여 볼타 강에 던저져 순교했다. 

 

카롤교에서 함께한 일행 사진을--그런데 맨 좌측 아저씨는 갑짜기 함께(개구장이인지 아니면 한국 줌마들의 미모 때문인지) 

 

 

카롤교에서

 

 

카롤교를 지나서본 프라하성 

 

프라하성
프라하의 구시가지(볼타강 맞은편)에서 카를교를 건너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길이 570미터, 폭 평균 128미터,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성(聖)비투스 대성당, 성조지바실리카, 성십자가교회 등 3개의 교회와

성조지수도원 등 다양한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3세 중엽에 초기 고딕 양식이 첨가되고,

이어 14세기에는 프라하 출신인 카를 4세에 의해 왕궁과 성십자가 교회 등이 고딕 양식으로 새롭게 건축되면서

이 때부터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 뒤 고딕 양식이 가미되고,

1526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르네상스 양식이 도입되었다.
그러다 바로크시대인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는데,

시작에서 완성될 때까지 900년이나 걸렸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왕궁뿐 아니라 성 안에 있는 모든 건축물들이 정교한 조각과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유럽에서도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라하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이다.

틴 성당

  틴 성당

프라하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교회로, 1365년에 건립되었다.
그 이후에도 계속 변형을해 17세기까지 다양한 건물 양식이 가미되었다.
외관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져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고,

 80m 높이의 2개의 첨탑은 이 교회의 상징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부는 바로크양식으로 되어 있어 비교적 어두운 느낌을 준다.

 

천문시계탑

천문시계탑 

장인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시계탑.
시계를 제작한 사람은 찰스대학 수학과 교수인 파뉴스.
제작이 완료 후 같은 이 아름다운 시계가 다른 곳에 설치될 것을 우려해

제작자의 두 눈을 뽑아 버렸다고 한다.

ㅠㅠㅠㅠㅠㅠ
자신이 만든 아름다움으로 인해 장님이 될 수박에 없었던 천재 수학자의 비운이 담긴 시계다.

 

이 시계탑은14세기 고딕양식의 구시청사에 30m 높이로 세워졌다.
시계탑 맨 위에는 종이 있고 황금 닭이 있다.

다시 사진을 보면서 ㅈ자세히 읽어보시기를---


그 아래에 네 개 의 창문이 있으며

매시 정각에 원형 시계 옆에 있는 해골모양의 인형이

한 손에 모래시계를 들고 줄을 잡아 당기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 한다.
그러면 정복욕망을 상징하는

터키군인인형(당시 오스만튀르크군),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유대인 인형,

허영심과 망상을 상징하는 거울을 든 인형들이 고개를 젓는다.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인형은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쾌락과 부와 사치와 허영에 몰두하고 있으나

결국은 생명의 시간이 다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인형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인간의 무지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종이 정시를 알리면 시계탑 꼭대기의 창문이 열리고

예수의 12제자 인형이 하나씩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를 상징하는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계 쇼는 끝난다.
(이종현지음 낭만의길 야만의길 에서)

 

우리 일행은 11시 50분에 그곳 광장에서 기다리다

창문이 열리고 12사도가 그 창 사이로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았다.

매 시간마다 종이 울리는 것을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프라함의 봄 함성을 울렷던 바출라프 광장은 마라톤 종착지점으로 갈 수 없어--ㅠㅠ 

마라톤을 완주하는 사람들이 은박지로 체온을 유지하기위한듯

 

 

프라하의 봄 음악제가 열리는 곳(위사진은 정문)

국기가 잇는곳에서 시작할때는 팡파르가---

<프라하의 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열리는(매년 5월 12일~ 6월 초순) 국제적인 음악제의 명칭.
프라하의 봄 이라 불리는 프라하 오월 음악 축제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50주년을 기념하여

상임 지휘자였던 라파엘 쿠벨릭에 의하여 1946년부터 시작되었고

매년 5월 12일부터 시작되는 것은

이 날이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라고 말하여지는 스메타나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이 음악제의 명칭인 <프라하의 봄>이 민주화 시위의 상징으로 쓰게된 동기는

1968년 소련군 점령사태 당시

한 외신기자가 “프라하의 봄은 언제 오는가” 라고 타전하면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