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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책임을 지는 방법

by 2mokpo 2014. 5. 30.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부회장 조광작 목사의 국민분류 기준에 따르면, 나는 천민이다.
그는 20일 연합회 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흘리지 않은 사람은 모두 백정”이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5·19 담화문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나온 발언이다. 나는 대통령의 눈물이 제물로 나온다고 보지 않았다.

담화 내용 또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렸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의인’들의 이름을 부르는 대목에서 울먹였는데, 두 고인의 이름이 틀렸다.
‘대통령의 눈물’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던 까닭은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다.

 대통령은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하긴 했다.

하지만 어떻게 책임을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내놓지 않았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나 그들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국민들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책임 이행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어야 한다. 자꾸 말로만 때우고 넘어가면 책임의식마저 잃게 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을 지는 방법이 뭘까? 한참 궁리하던 중에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으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얼마 전 들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료들이 사재를 털어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거다. 생각하면 할수록 여러 가지 측면에서 효과적이며 합당한 제안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관련해, 정부에 형사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대신 피해 보상과 손해 배상의 책임은 마땅히 져야 한다.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과 예방 노력을 소홀히 했으며, 세월호 침몰 뒤 신속한 구조와 복구의 임무를 방기하거나 실패했다.

재난에 대한 국가(정부)의 배상 책임은 선례도 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때는 정부가 해운사보다 20배나 많은 배상금을 지급했다.
이번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청해진해운 쪽은 배상 능력을 이미 거의 상실했다. 순자산이 고작 65억원이다. 보험약정에 따른 보험금 지급도 불투명하다.

해운사와 선장의 중대 과실에 따른 사고인 탓이다.

검찰은 유병언씨 일가를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주’로 보고 약 2400억원 상당의 추징보전 명령을 법원에 청구하긴 했으나,

실제 세월호 사건의 책임재산으로 확정되긴 쉽지 않다. 정부 추산으로는 이번 사건 수습 비용은 최소 6000억원대에 이른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먼저 국민의 동의를 구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며 국회 심의 절차도 거쳐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논의 과정에 또다른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간단한 방법으로, 박 대통령이 앞장선 전 공무원의 자발적 기금 출연을 제안한다.

60만 공무원이 한달치 월급의 10%씩 한번만 내더라도 2700억원대이다. 박 대통령은 26억원가량으로 알려진 전 재산을 내놓는 게 좋겠다.

1979년 전두환씨로부터 받은 공돈 6억원, 지금 물가로 계산하면 28억원이다. 지난 대선 때 사회환원을 약속한 만큼 지금이 적기다.
박 대통령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독을 키운다”는 영국 대문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늘 가슴에 새겨둔다고 한다.

실천을 그만큼 중시한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집권 이후에는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약속들이 너무 많았다.

국민통합, 경제민주화, 국가안전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공수표만 남발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책임 이행부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줬으면 한다.
2014년 5월30일 한겨레 박순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