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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5공 회귀’ 검찰 인사

by 2mokpo 2014. 1. 15.

‘5공 회귀’ 검찰 인사 / 김이택

1981년 10월8일 서울지검 특수1부는 열량 미달의 불량 연탄을 만들어 판 혐의로 당시 대표적인 연탄제조업체 대표 3명을 구속했다.

다음날 언론은 이들이 장당 20원씩 연간 400억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1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업자들에게 속은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자 대통령은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며 수사에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임상현 특수1부장은 서울고검으로 쫓겨갔고, 안대희 검사는 해외연수 뒤 강원도 영월로 갔다.

‘저질연탄’ 사건은 검찰사에서 검사가 수사를 열심히 했다가 불이익을 받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87년 박종철씨 고문치사 범인 은폐조작 사건처럼 검찰이 정권의 요구에 따라 적당히 덮거나 왜곡한 경우는 물론 수두룩하다.

그러나 6공 초기 정권의 인내 한계를 넘나들며 5공 비리를 적극 수사했던 검사들도 특별한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다.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 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대통령 아들들을 구속했지만 그것 때문에 쫓겨가거나 좌천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여론정치가 정착되면서 정당한 검찰권 행사에 대해선 권력도 간섭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안대희 검사의 사례는 상징적이다.

그는 ‘저질연탄’ 사건 22년 뒤인 2003년 대검 중수부장으로서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파헤쳐 국민들로부터 ‘국민검사’라는 애칭과 함께 박수를 받았다.

대통령 핵심 측근인 안희정씨(현 충남지사)를 구속했으나 불이익은커녕 노무현 정부 추천으로 대법관에까지 올랐다.
당시 중수부에 있던 윤석열 검사는 10년 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서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을 맡아 불법 대선개입 사실을 제대로 파헤쳤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고검, 그것도 지방 고검으로 좌천됐다.

‘경향 교류’를 명분으로 채동욱 전 총장 시절 발령받은 서울의 중견 검사들까지 대거 지방으로 내려보냈으니 5공 때나 볼 수 있었던 ‘싹쓸이 인사’의 부활이 아닐 수 없다.
출처 : 2014.01.14 19:01 한겨레 유레카
김이택 논설위원 ril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