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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마음을 잡는 자, 세상을 잡는다

by 2mokpo 2014. 1. 14.

귀족 대신 유목민 병사 위해 차별 없애고 전리품 공동 분배
몽골 초원 따라 풀어낸 역사
■마음을 잡는 자, 세상을 잡는다(서정록 지음, 학고재 펴냄)
믿음·신뢰 강조해 몽골 유목민 마음 사로잡아
전리품 등 공정 배분… 신분제도 철폐도 앞장


사람들은 칭기즈칸 하면 야만적인 군주,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자, 기마 군단으로 세계를 정복한 자 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칭기즈칸은 귀족들이 누려오던 모든 권리를 평민들에게 돌려주었으며, 모든 사람이 능력에 따라 대접받는 새로운 민주 사회를 열었다."

철학자이자 동북아 역사 연구가인 저자는 800년 전 칭기즈칸이 몽골 고원에서 시작해 세계최대의 제국을 건설하게 된 배경을 이 같은 '수평적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

'마음을 잡는 자, 세상을 잡는다'라는 책 제목처럼 잔인한 군주로만 알려진 칭기즈칸의 새로운 면모를 밝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칭기즈칸이 활약하던 당시 몽골 고원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몽골의 명문 귀족들은 돌궐족과 위구르족이 떠난 초원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한 전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몽골의 전통적인 친족체계는 무너졌다. 부족 간 갈등과 분열은 살기 위해 상대를 무조건 죽여야 하는 전쟁의 연속으로 치달았다.

칭기즈칸은 그런 무한 경쟁의 제로섬게임에서 벗어나려면 사람들이 본래의 착한 심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칭기즈칸은 자신을 따르는 몽골 유목민들에게 "서로 믿고 신뢰하는 관계가 회복되어야 하며, 믿음과 신뢰를 잃어버린 자는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칭기즈칸은 귀족들이 이해관계를 따지고 셈하던 것과 달리 목숨을 바쳐 싸우는 하층 유목민 병사들을 위한 정책을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이상과 꿈을 병사들과 공유해야 만 실현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으로 옮겨 불합리한 차별을 철폐했다.

우선 전리품 배분 방법부터 바꿨다. 당시 전리품은 약탈한 사람의 소유였지만 귀족들이 그에 대한 우선권을 갖고 있었다. 군사들은 이에 불만을 가져왔는데,

칭기즈칸은 "전리품을 공정하게 배분하자"고 제안해 병사들과 귀족들이 공평하게 나눠 가지도록 했다.

칭기즈칸은 이어 귀족과 평민의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능력만큼 대접받는 새 세상을 열었다.

1204년 동몽골의 어르노오에서 선포한 천호제(千戶制)와 만호제(萬戶制)의 시행으로 신분차별을 없애고, 능력만으로 전문가를 뽑아 양성하는 케식텐 제도를 실시했다.

몽골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이 세계제국으로 발을 넓힌 것도 전쟁을 원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불안정한 몽고 기후와 척박한 땅,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꿈과 이상의 확대라는 '평화적 이유'에서 찾고 있다. 칭기즈칸은 주변 국가 정복에 나설 때 정중한 교역 사절단을 먼저 보냈고,

상대국이 몽골의 교역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에는 몽골 제국의 일원으로서 자신들의 제도와 문화ㆍ관습ㆍ종교를 지키게 해 줬다.

오히려 몽골의 말발굽이 유럽을 중세의 암흑에서 깨어나게 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사람, 신뢰, 평등을 추구했던 칭기즈칸의 리더십은 이상적인 지도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역사와 여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제공하는 이 책은 칭기즈칸의 흔적이 남아있는 몽골과 바이칼 지역의 답사길을 함께 따르며 그의 평화적 이상을 좇는 동시에

그 지역에 기원을 둔 우리 민족의 뿌리까지 더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