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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꼭 ‘6년차 정부’처럼

by 2mokpo 2014. 1. 10.

꼭 ‘6년차 정부’처럼

박근혜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나오는 말에 머리가 무겁다. ‘비정상의 정상화’ ‘자랑스러운 불통’

 ‘SNS 유언비어’ 등. 권력의 주변에서 나오는 말이 도무지 가슴에 와닿지 않고 공허하다.  장낙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시사 에세이’를 쓰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마주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도 새해를 맞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았으니 덕담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강박 때문이다. 몇 차례 생각을 ‘들었다 놨다’ 하다 그 강박에 시달리지 않기로 했다.

달의 문화가 원형(原型)인 우리나라에서는 ‘설’이라는 그럴듯한 샛길이 있기 때문이다. “덕담은 갑오년이 정말로 시작되는 설에…”라고 생각을 바꾸자 신기하게도

지끈거림이 사라진다.

 

이런 내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가늠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즈음,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언급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다시 머리가 무거워진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지당한 이 말을 두고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화부터 정상화하라”며

날 선 비판을 날리고, 상당수 사람들이 부정적 평가를 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상황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나 ‘새로운 미래’를 언급한 대통령으로서는 이러한 반응들이 못마땅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그러한 반응이 나온 배경을 이해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1년간 지속되어온 갈등의 요체는 지난 정부 5년간 행해진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달라는 요구였고,

국민 대통합으로 이러한 갈등 구조를 허물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 5년’이 아니라 ‘합해서 6년’간 비정상화가 이어지거나 강화되어왔으며,

국민 대통합에 역행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국민들에게 대통령 신년사의 정상화 발언은 도무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공허한 얘기이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의 미래를 열자’는 발언 또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 것도 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의 인사들이다.

그들이 지난 한 해 맘껏 구사한 ‘종북’ 용어 등 많은 언사(言辭)들이 1970~ 1980년대 독재 시절로 회귀하는 듯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고,

많은 이가 그렇게 평가하는데, 그것이 어찌 ‘새로운 미래’에 대한 언급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이정현 홍보수석이 언급한 ‘자랑스러운 불통’은 소통을 수치스러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한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혼란과 분열을 용납하지도 묵과하지도 않겠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일일 뿐 아니라,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자주 듣던 발언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유언비어’라는 말 대신 ‘광우병 괴담’처럼 ‘괴담’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이명박 정권이었는데, 최근 대통령의 입에서는 ‘괴담’이라는 말 대신

 ‘유언비어’(이를테면 “SNS 유언비어 방치하면 국가적 혼란”이라는 말처럼)라는 표현이 나온 것도 예사롭지 않다.

유언비어라는 말에 비해 괴담이라는 말이 더 좋은 의미라는 게 아니라, 사고가 ‘1970년대로 회귀’하는 흐름이 영 께름칙하다는 뜻이다.

 

언론이 공론장 기능을 못할 때 ‘유언비어’가 나오는 것인데…

 

나아가 유언(流言)이 ‘왜 나타나는지’에 대한 성찰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유언은 언론이 통제되는 등 정보의 정상적 흐름이 막혔을 때 나타나며,

정부 당국자가 유언을 부인하는 그 순간부터 유언은 진실인 양 확산된다는 특성이 있다.

결국 대통령이든 또 다른 정부 당국자든 ‘유언의 발생’을 걱정하는 것은 언론이 공론장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에 그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회귀에는 회귀로!’ 1970~1980년대로의 회귀에는 대자보 형식이 가장 적합한 대응책인 양,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 대학생의 대자보가 많은 이의 마음을 움직여 폭발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4·19 혁명도, 부마항쟁도, 5·18 민주화운동도,

 6·10 항쟁도,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도 모두 한순간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여 이루어낸 것이다.

 

이 ‘대자보’ 열풍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성찰을 하기보다 “철도노조와 야권이 개입되었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라며

공을 야권으로 넘기려 한 집권 여당의 사무총장에게, 그리고 아직도 비정상을 정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그래도’ 다음 경구를 새해 덕담으로 전하고 싶다.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

 

시시 IN [330호] 2014.01.11 에서 퍼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