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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나무 이야기

노린재나무

by 2mokpo 2013. 10. 8.

 

 

 

 

 

                 녹음이 짙어 가는 늦봄의 끝자락 5월 말이나 6월초쯤 산에 오르면 숲 속의 큰 나무 밑에서 새하얀 꽃 뭉치를 잔뜩 달고 있는 자그마한 노린재나무를

                 흔히 만난다. 다섯 장의 갸름한 꽃잎 위로 노랑 꽃밥과 긴 대궁을 가진 수술이 수 십 개씩 뻗어 있어서 꽃잎은 묻혀버리고 작은 솜꽃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듯하다. 은은한 향기도 갖고 있어서 등산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이 나무는 노란 재를 만드는 나무, 즉 황회목(黃灰木)이란 뜻을 갖고있는데, 특별한 쓰임새가 있다. 자초(紫草)나 치자 등 식물성 물감을 천연섬유에

                 물들이려면 매염제(媒染劑)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은 명반이나 타닌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옛날에는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나무를 태운

                 잿물이었다. 노린재나무는 전통 염색에 매염제로 널리 쓰인 황회를 만들던 나무이다. 잿물이 약간 누른빛을 띠어서 노린재나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는 숲 속의 수많은 이름 없는 자그마한 나무 하나에 불과하지만 불과 백여 년 전만 하여도 천에 물감을 들일 때 꼭 있어야 하는 귀중한

     자원식물이었다.
 
     중종 8년(1514) 의 실록에는 죽청이란 스님이 ‘지금 황회목(黃灰木)으로 돈 버는 일 때문에 곽산(郭山)에 와 있다’고 행적을 기록한 내용이 실려 있다.

     영조26년(1750)에 편찬한 궁중의복의 규범서 상방정례(尙方定例)에 ‘명주를 자주색으로 염색할 때는 한 필에 지초 8근, 황회 20근, 매실 1근으로 염색한다’

     하였다. 순조 9년(1809)에 나온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자초 염색을 할 때는 노란 잿물을 받아 사용한다’고 하여 조선조 때는 황회가 염색에 빠지지 않은

     매염제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황회를 이용한 염색기술은 멀리 일본까지 수출하기도 하였다. 대화본초 (大和本草)라는 그들의 옛 책에 따르면 ‘조선사람의 도움을 받아 노린재나무의

     잎을 끓인 즙으로 찹쌀을 물들여 떡을 만들고 4각형으로 잘라서 팔았다’고 하였다. 역시 같은 책에 ‘잎을 건조하면 대개 황색으로 되고 이것은 염색할 때 명반

     대신에 사용하므로 한자 이름은 산반(山礬)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황회를 이용한 염색법은 널리 퍼지게 되고 제주도의 섬노린재는 일본인들이 아예 탐라단(耽羅檀)이라 부른다.
 
      기껏 다 자라야 사람 키 남짓하고 팔목 굵기가 고작인 줄기를 위로 내밀어 사방으로 가지를 여기저기 뻗친다.

     거의 수평으로 긴 타원형의 수많은 잎을 펼치고 있는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이 나무가 살아가는 처지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햇빛을 더 많이 받아 보겠다는 처절한 키다리경쟁에서는 물려받은 유전인자로는 가당치도 않으므로 일찌감치 포기하였다.
 
     어쩌다 잠깐 들어오는 햇님의 은총을 펼쳐진 잎으로 최대한 받겠다는 것이 그들의 생존전략이다. 그래서 음지는 물론 추위와 메마른 땅, 공해에 찌든 도심, 

     갯바람을 마주하는 바닷가까지 씨앗이 어디에 떨어져도 잘 자라는 뛰어난 적응력을 과시한다.
 
     꽃이 지고 나면 팥알보다 좀 굵은 갸름한 열매가 달린다. 초가을에 들어가면서 익어 가는 열매의 색깔로 노린재나무의 종류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곱고 짙푸른 벽색(碧色)의 노린재나무, 흰색의 흰노린재나무, 검은 빛깔의 검노린재나무,벽색이 너무 진하여 거의 검은 빛으로 보이면 섬노린재나무이다.

 

     사진 : 2013년 9월28일 선암사 에서

     글  :  박상진저 궁궐의우리나무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