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이사람]·
5·18 광주민주항쟁 이후
교도소 안에 갇혀 있던 당시 투옥과 고문으로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다.
교도소 밖에서 들려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굉음이
마치 돌아갈 수 없는 세계의 아우성 같았다.
밤이면 장난처럼 자행되는 계엄군의 구타와 폭언은 스물한 살 청춘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공포와 충격 그 자체였다.
군인들이 내 뱉는 비속어와 은어 자체를 이해 못해 수없이 구타당하기도 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곳은 창문하나 없는 창고였다.
안쪽 한 귀퉁이에 임시로 설치한 소대변통에서 풍기는
악취때문에 더운 날엔 군인들도 들어오길 꺼렸다.
그렇게 한 달 여를 세수는커녕 씻지도 못하고 지내다보니
피부병의 일종인 전염성 강한 ‘옴’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다른 수감자들과 격리되었고,
곧이어 다른 곳으로 이송되었다.
그곳 역시 여건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행운이 찾아들었다.
당시엔 폭군이나 다름없었던 계엄군 중에 천사와도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가 매일 아침과 저녁,
주저하는 나를 간이목욕탕으로 데려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말끔하게 씻어 주는 게 아닌가!
같은 처지의 동료들도 행여 옮길까봐 날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그것도 맨손으로! 온몸 구석구석 꼼꼼히,
마치 세례(洗禮)의식이라도 치르듯. 매번 겸연쩍어 내 스스로 씻는다고 하면
자애로운 형처럼 입가에 맑은 미소를 지으며
“그냥 있어, 괜찮아!”라고 위로했다.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얼마나 콩닥거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트라우마를 지우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변변한 약도 먹지 못했는데 채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말끔하게 나았다.
당시 그의 계급은 상병, 이름은 차재욱! 그립고 보고 싶다.
30년도 더 지났지만,
지옥 속에서 만난 그 천사는 아직도 내 가슴에서 훈훈한 자애로움과 사랑으로 자라나고 있다.
2013년 7월4일 사진포함, 한겨레 닷컴에서 최상용(인문기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