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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자연, 환경, 숲

은사시나무

by 2mokpo 2013. 6. 4.

꽃가루 골치 은사시나무, 야생동물에겐 천국
딱따구리 집 쟁탈전
재질 무르고 꽃가루 날려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조림수 은사시나무. 하지만 이 집을 노리는 야생동물은 줄을 잇는다.

사람은 쓸모를 다했다고 베어내는데, 새들과 작은 동물은 이 나무의 둥지를 서로 차지하느라 짧은 봄날이 더 바쁘다.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에 은사시나무 숲 하나가 단정하게 앉아 있습니다. 곁으로는 맑디맑은 계곡이 흐르고요.

그 숲은 30년이 넘도록 표고버섯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노부부의 손길이 빚어낸 것입니다.

버섯을 키우려면 강한 햇살을 가려야 했기에 두 분은 돌밭을 일궈 은사시나무를 빼곡하게 심으셨습니다.

은사시나무는 한 줄기 빛이라도 더 많이 만나는 것이 살길이었기에 옆으로 가지를 내는 힘도 아끼며 다투어 키 자라기에 분주했습니다.

속성수의 특성에다 빽빽하게 들어선 환경의 압력이 보태졌고 흘러간

시간까지 쌓여 현재 숲에 있는 은사시나무들은 곁가지도 거의 없이 늘씬한 몸매를 뽐내며 하늘에 닿을 듯 서 있습니다.
몇 해 전, 두 분과 더불어 나무도 나이가 들며 숲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버섯 농사를 접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이 주는 빛을 가릴 필요가 없어진데다 수세가 약해져 쓰러질 위험이 있는 나무들을 군데군데 베어내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만 특히 자연에서는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적당한 굵기로 쭉 뻗은 줄기에는 처음부터 곁가지가 없어 걸림이 적은데다 나무 사이의 간격까지 넓어지면서 숲에 숨통이 확 트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은사시나무는 재질이 무른 편입니다. 결과적으로 굵고 무른 나무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서 있는 형상이 되어,

딱따구리가 편하게 드나들며 둥지를 짓기에 꼭 알맞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뚫고 아래쪽으로 파내려가 빈 공간을 만듭니다.

비바람과 눈보라를 막아주는 아늑함은 기본이고, 천적 방어에도 완벽한 둥지입니다.

그러니 숲 속의 다양한 생명체들이 귀한 보금자리를 탐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숲은 곧바로 까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쇠딱따구리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딱따구리가 모두 모여드는

딱따구리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온 산을 더듬듯 다니며 온종일 발품을 팔아도 딱따구리의 둥지 하나 찾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 자리에 서서 우리나라에 깃들어 사는 모든 종류의 딱따구리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숲이 만들어진 것이니 기적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숲의 축복은 딱따구리의 천국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딱따구리의 둥지는 딱따구리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뚫고 아래쪽으로 파내려가 빈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둥지를 짓습니다.

비바람과 눈보라를 막아주는 아늑함은 기본이고, 천적을 방어하는 데에도 최고인 완벽한 둥지인 셈이지요.

그러니 숲에 기대어 사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이처럼 귀한 보금자리를 탐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나무에 구멍을 뚫고 파내서 둥지를 지을 능력이 없는 많은 새들이 속속 숲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박새, 쇠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동고비와 같은 작은 크기의 새들로부터 파랑새, 호반새, 소쩍새와 같은 중간 크기의 새를 비롯하여

큰소쩍새와 원앙과 같이 몸집이 큰 새들도 딱따구리의 둥지를 기웃거렸습니다.

딱따구리는 종류에 따라 몸의 크기 차가 커 둥지의 규모도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다람쥐와 하늘다람쥐도 이처럼 좋은 기회의 땅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둥지의 주인인 딱따구리와 딱따구리의 둥지에 입주하기를 희망하는 다른 친구들 사이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딱따구리가 하루 종일 둥지만 지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딱따구리는 아예 둥지를 새롭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며 은사시나무 숲은 딱따구리의 천국에서 다양한 생명체의 천국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은사시나무 숲은 까막딱따구리, 원앙, 소쩍새, 큰소쩍새, 하늘다람쥐를 포함한 5종의 천연기념물이 이웃하여 살아가는 아주 특별한 숲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다양한 생명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은사시나무 숲이 현재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은사시나무의 꽃가루와 씨앗 때문에 살기가 힘드니 은사시나무를 베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베어내고 있습니다.
은사시나무의 꽃가루와 씨앗이 사람을 무척 괴롭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귀찮다고 해서 생명을 베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그 고통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정 그렇다면 베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나라의 은사시나무 숲은 어디라도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습니다.

다 베지 말고 듬성듬성이라도 남겨두었으면 합니다. 숲 가까이 계곡 하나쯤 품고 있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강원도의 어느 노부부가 빚어낸 것처럼 온갖 생명이 춤을 추는 은사시나무 숲이 남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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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시나무는
은사시나무는 중앙아시아 원산인 은백양나무와 자생 수종인 사시나무가 자연적으로 교잡을 이뤄 탄생한 나무를 대량으로 증식한 대표적인 조림수종이다.

은백양나무와 수원사시나무의 교잡종을 대량 증식하는 데 성공한 임목육종학자 고

현신규 박사의 성을 따 현사시나무라고도 한다.
빠르게 자라는 이 나무를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까지 전국에 많이 심었다.

조림 면적은 한창때 연간 10만㏊에 이르렀는데, 요즘 조림면적을 모두 합쳐 연간 2만㏊인 데 견주면 엄청난 면적이다.
펄프, 성냥개비, 도시락 상자 등을 만드는 데 썼지만 재질이 무른데다 형질도 차츰 나빠져 이후 주요 조림 수종에서 빠졌다.

여기엔 1980년대 중반부터 성숙기에 이른 은사시나무에서 꽃가루와 씨앗 솜털이 대대적으로 날리면서 큰 사회문제가 된 것도 작용했다.

현재는 간척지와 수변 등에서 나무 펠릿이나 칩 같은 바이오매스 생산용으로 주로 쓰인다.
김인식 국립수목원 박사는 “조림 양은 많지만 20년쯤 지나면 나무가 썩거나 넘어져 큰 나무는 많이 볼 수 없다.

요즘 주요 수종갱신 대상은 현사시나무보다는 리기다소나무이다”라고 말했다.

자료출처 : 20130522 한겨레 닷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