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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50대 보수화론의 오류

by 2mokpo 2012. 12. 24.

아직은 마음이 무겁다. 많은 이들이 대선에 절박한 기대를 건 이해당사자였고,

필자도 냉철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희망고문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죄송하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서는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대선 결과에 대해 ‘보수화된 50대의 역습’이 대선 승부를 갈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상 향후 한국의 정치지형이 보수화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보수진영은 정치환경의 변화가 가져다줄 이득에 벌써부터 환호하고 민주진보진영은 갈수록 집권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비관한다.

 

이러한 분석을 접하다 보니 2002년 대선 직후의 상황이 떠오른다.

당시에도 ‘세대전쟁’이 격렬했다. 2030세대는 진보, 5060세대는 보수로 확연히 갈라져 있었고, 40대가 균형추 역할을 했다.

5060세대는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인구 비중이 29.3%에 불과해 48.3%에 이른 2030세대에 밀렸다.

이를 두고 민주진보진영 일각에서는 2030세대 인구가 많고 또 새로 유입되는 젊은층은 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진보의 재집권이 유리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10년 전 분석과 예측이 터무니없었음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50대 보수화’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연령효과와 세대효과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보수화된다는 것이 연령효과다.

세대효과에 따르면 성장기 또는 청년기 세대 공통의 역사적 경험이 이후의 정치적 선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민주화운동 세대라 불리는 486세대가 대표적 사례다. 진보는 세대효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보수는 연령효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연령효과와 세대효과 중 어느 것이 더 강력한가는 단언하기 어렵다.

인간은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고 그 변화의 방향은 획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50대는 1987년 넥타이부대로 민주항쟁을 지원했고 이후에는 김대중·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면서

민주정부 탄생을 이끌었던 세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당시 40대(지금 50대)는 나이가 들어도 안보와 산업화로 무장한 이전 세대와 달리

급격히 보수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들이 10년 사이에 한국의 보수파의 주축으로 부상했다.

 

청년이 나이가 들어 50대가 되면 안정지향적 성향을 지니게 된다는,

즉 연령효과에 기댄 분석은 어떤 현실적 함의도, 힘도 없다.

 고령화 사회를 바꾸려면 지금의 젊은이들이 더 많이 출산해야 한다는 허무한 결론에 이를 뿐이다.

젊은 시절 민주파의 지원군 구실을 했던 지금의 50대에게 지난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민주진보진영은 왜 이들을 설득하지 못했는지 반성해야 할 시점에

‘50대의 보수화’ 때문에 졌다는 태도는 무책임하기조차 하다.

이들이 40대였을 때 참여정부는 양극화, 격차 심화 속에 고용불안, 교육불안 등 불안을 가중시킴으로써 안정을 더 갈망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에도 민주진보세력은 신뢰를 보여주지도, 이들의 불안을 다독여주지도 못했다.

이 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며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 한 가지, 5060세대의 인구 비중이 40%에 육박하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중장년층의 표심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새삼스러운 발견이 아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주어진 환경일 뿐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50대의 높은 인구 비중과 높은 투표율 때문에 대선에서 실패했다며,

전략 부재를 환경 탓으로 돌릴 때 실패는 반복된다.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고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시기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oc.kr

한겨레신문에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