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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김대중 옥중서신(지영이 모에게)

by 2mokpo 2010. 9. 18.

1980년 12월 19일 지영이 모에게!

 

내가 너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은 견실하고 겸손한 자세를 그대로 갖추면서 네 남편의 발전을 위해 좋은 협조자가 되어 주어라.

 

언제나 남편과 같이 있는 심정으로 그가 하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남편의 가장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자는 가정에만 있으니 자칫하면 세상일에 어두워진다. 그러므로 의식적으로 남편의 일의 분야에 관한 신문, 참고 서적, 세론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항시 남편을 위해 조언할 일이 없는지 생각하는 습성을 들여야 한다. 부부는 한 몸이며, 한 생각이며, 한 느낌이며, 한 행독 속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남편의 일에 관심 갖고 도우라는 것은 결코 남편 일에 간섭하고 남편을 지배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남편의 하는 일이나 생각과 단절된 아내도 불행하지만 남편을 지배하는 아내는 가장 불행하다. 남편 일에 무관심하거나 아무 도움이 안 되면 정신적으로 남남이 되고, 남편 일에 간섭하고 지배하면 남편을 병신 만들고 자기는 남편을 우러러보고 의지하는 아내로서의 행복을 잃는다. 그러므로 가장 현명한 아내남편의 일에 완전한 지식과 판단을 가지면서 이를 남편에게 강요하지 않고 남편 스스로가 자기 능력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암시하고 겸손하게 조언하되 언제나 그 최후 결정은 남편이 내리는 형식을 취하도록 해야 한다. 지면상 그 외 몇 가지를 간단히 적는다.

 

◈ 아내는 언제나 남편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의 잠재능력을 찾아내서 이를 일깨워주고 격려함으로써 남편이 새로운 자신을 가지고 도전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 아내는 남편이 양심과 도덕에 어긋난 일을 하거나 비겁한 처신을 하려 할 때는 이별을 각오하고라도 이를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그런 아내는 남편의 존경을 받게 된다.

 

◈ 아내는 언제나 자기 연령에 상응한 아름다움을 간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내면생활의 진선미와 더불어 사치 아닌 깨끗하고 자기 개성에 맞는 몸단장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남편을 자기 옆에 기쁜 마음으로 있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 집안의 정결, 정돈, 미화 그리고 남편 구미에 맞는 식사의 준비 등은 남편을 가정에 충실하게 하는 큰 비결인 동시에 딸 가진 어머니로서 자식에 대한 아주 중요한 산 교육이다.

◈ 남편을 위한다는 심정으로 가정사를 상의 안 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요한 일은 반드시 남편과 상의해서 가정에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자식들이 커감에 따라 그들과 상의하는 범위도 넓혀 가야 한다. 정기적인 가족회의를 갖는 것은 가족의 화목과 일체감을 위해서 아주 필요하다.

 

◈ 홍일이가 돌아오면 너희들의 장래 진로에 대해서 협의 결정하여라. 신중하고 충분한 토의를 하고 필요하면 부모, 형제, 친척들과 상의하여라. 일단 결정하면 만난을 무릅쓰고 일생을 거기다 바쳐라. 목표는 높이 잡고 실천은 한 단계 한 단계 착실하게 해나가라.

 

◈ 무리도 말고 쉬지도 말아라.

 

◈ 고난에 처해서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고난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난 속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사랑의 역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려는 사람에게는, 고난그를 성장하게 하는 시련은 되어도 결코 불행의 사자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사에는 반드시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양면이 있다. 따라서 우리의 대처 여하에 따라서는 좋은 일이 재앙이 되고 나쁜 일이 복을 가져온다. 부자의 아들이 돈 때문에 타락하고 가난한 집 아들이 그 때문에 분발하듯이.

 

◈ 아이들에게는 어렸을 때의 종교교육, 그리고 도덕적 교육이 일생을 지배한다. 인간에게는 어떠한 희생이나 손실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선(善)절대고 범해서는 안 되는 악이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 아이들의 머리에 강하게 심어 주어야 한다. 언제나 하느님이 같이 계시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느끼게 해주어라.

 

◈ 지영이와 정화가 오직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도덕적인 생활 속에 자기 개성을 잘 발전시켜 나가도록 둘이서 잘 지도하여라. 매일 애들을 생각하고 있다.

 

◈ 나는 우리 집안의 가훈으로서 다음 세 가지를 이야기하였다. 첫째는 하느님과 양심에 충실하게 살 것. 둘째는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가운데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 나갈 것, 셋째는 생활의 안정에 필요한 재물 이상의 부를 탐내지 말 것, 이 세 가지는 서로 관계가 있다.

 

◈ 항시 우리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말고 마음으로나마 위로와 격려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 너와 아이들의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여라. 이런 때일수록 가족이 모두 건강이라도 잘 지켜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이 반드시 우리 가정과 너희들을 지켜 주실 것이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로마 8,28)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우리가 믿고 나아가자.

 

『김대중 옥중서신』中 아내, 엄마인 며느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