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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자연, 환경, 숲

18-숲과삶의 질

by 2mokpo 2010. 9. 2.

2000년 동해안 지역에 대형 산불이 발생하여 온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산불 진화 작업이 완료된 후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산림 담당부서인 산림청과 지자체, 지역학계,

NGO의 관심은 과연 이 엄청난 화상을 입은 국토를 어떻게 치료할 것이냐에 집중되었다.

수개월에 걸쳐서 200여명의 단원들이 조사하여 내린 결론은 인공복구 52%, 자연복원 48%를 적용하여 치료하는 것이었다.

이때 인공복구 방법으로 경관조림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이것은 마을, 문화유적지,

도로변 등 생활권역에 대해서는 일반 조림수종을 심지 않고 화목류 등 경관적 가치가 높은 나무를 심는 방안이었다.

한편 일부 지역에서는 자연복원 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해 왔다.

새까맣게 타버린 숯검댕이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십수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 속에는 방문을 열면 앞산에 녹색의 숲이 펼쳐져야 한다는 삶의 질적 향상을 요구하는 속뜻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불과 30여년 전인 1970년대, 국민들은 ‘치산녹화’라는 기치아래 한 그루의 나무라도 더 심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땔감이 궁했고 맨살을 드러낸 산야를 다니면서 먹을거리를 찾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나라 못지않은 훌륭한 숲을 지녔고 그 숲 속에 자리잡은 작은 오솔길을 거닐며 삶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인공이 가해진 것이든 자연 상태이든 간에 숲의 모습은 그야말로 보기에도 좋은 떡이 되어 있다. 헐벗은 모습은 산불 피해지에서나 볼 수 있는데

그것도 몇 년만 지나면 볼 만하게 바뀐다. 수십년의 노력으로 땅이 비옥해졌고 대지는 풍부한 종자원을 보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형이나 토양이 다양하듯이 그 위에 형성된 숲의 모습도 다양하다. 한라산의 구상나무 숲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처럼 그 속으로 난 길을 걸어가며 숲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해남 대흥사의 동백나무 숲처럼 눈을 즐겁게 해주는 숲이 있는가 하면 보성의 차밭처럼 미각을 즐겁게 하는 숲이나

장성의 편백림처럼 향기를 제공하는 숲도 있다.

물론 소광리나 대관령, 준경묘의 소나무처럼 껴안아 촉감으로 그 우람함을 즐길 수 있는 숲도 있고 섬진강의 대나무 숲처럼 청각을 자극하는 숲도 있다.

이처럼 육체의 오감을 자극하는 숲을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동네 어르신들 큰잔치, 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을 위한 대형 버스의 행렬이 명산을 찾아 줄을 잇는가 하면 가족 나들이용 차들도 휴일만 되면

고속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들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 혁명의 도래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단 몇 분 만에 약간의 노력으로 출력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와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현지에 사는 사람보다도 더 잘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몇 해 전, 선암사에 간 적이 있는데 문간에 앉아 있던 스님이 우리가 가지고 간 선암사 관련 자료를 보고는 놀라워하던 기억이 있다.

과거에는 인쇄물을 통해서야 간신히 습득할 수 있던 지식들이 날개를 달고 공중에 떠다니는 세상으로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생태기행이나 문화기행이 활성화되면서 전 국토가 관광지가 되어버렸다.

산과 강, 들과 바다, 국토의 모든 구석구석이 세상에 알려지고 어느 곳엘 가도 인산인해였다.

여기에는 최근 불어 닥친 한류열풍도 가세하여 외국인들까지도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를 찾아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엄청나게 좋은 숲이 아니더라도 영상에 아름답게 담겨진 모습을 가진 곳이라면 갖은 교통수단을 동원하여 눈으로 확인하려 든다.

10여년 이상 숲과 관련된 기행과 문화행사를 치르면서 이제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어본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숲에 들어가 오감을 열고 육감을 영성하게 하라고.

그러나 육감을 영성케 하는 숲은 어디에 있을까? 그곳은 바로 우리 마음 안에 있다.

여러 숲을 볼 양으로 시간을 쪼개어 누비고 다니면 오감은 즐겁겠지만 육감을 트지 못한다.

이제는 한 장소를 찾아 그곳의 숲을 두 발로 답사하며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면서 탐방하는 모습으로 변모시키길 바란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태백산, 모악산, 계룡산, 남해 금산 등을 찾는 신앙인이 되자는 것은 아니다. 숲에 들어가 어떻게 하면

더욱 숲이 좋아질까 하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서로 공간을 쪼개어 나누어 쓸 때가 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간적 이동이나 활동 공간도 줄이고

그 숲을 나의 숲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숲해설가 한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자. “당신은 이 숲을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는가?”라고.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스쳐 지나가는 지식이 아닌 나만의 고유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료출처 : 경향닷컴

〈임주훈/국립산림과학원 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