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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자연, 환경, 숲

16 숲 윤리

by 2mokpo 2010. 2. 1.
캐나다 밴쿠버섬 서해안 원주민(아메리카 인디언)은 숲에서 모든 것을 얻었다.
식량으로 쓰던 연어나 열매는 물론, 질병을 치료할 때도 다양한 숲속 식물로부터 추출한 물질을 이용했다.
집을 지을 때, 여행하거나 물건을 나르기 위해 쓰던 카누를 만들 때도 숲속 나무를 쓰러뜨리거나 이미 쓰러진 나무를 이용했다.

이들은 또 유럽인들과 본격적인 교역이 시작되기 전인 20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측백나무와 흡사한 시다나무 껍질을 벗겨 모자·의복·바구니를 만들었다.
나무 껍질을 벗기는 작업은 주로 여성의 몫이었다.

원주민 여성은 나무 껍질을 벗기기 전 간단한 의식을 치렀다. 이들은 나무 앞에 서서 나무의 정령에게 기도를 올렸다.
“나무님!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이 필요합니다. 그 옷의 일부를 제게도 나누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친 여성은 가슴높이에 한 뼘 정도 칼자국을 만든 다음 위로 잡아 당기면서 껍질을 벗겼다.
껍질을 벗길 때는 나무줄기의 3분의 1 정도만 벗겼다. 그 이상 벗기면 나무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원주민 여성은 나무껍질의 3분의 1 이상을 벗기면 주위에 서 있던 다른 나무들이 증인이 돼 나중에 저주를 받게 된다고 믿었다.

수렵에 종사한 원주민 남성이 매년 가을 강으로 회귀하는 연어를 잡을 때도 같은 철학이 적용되었다.
첫 무리 연어가 상류로 이동해 충분한 산란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 다음 무리 연어를 잡았다.
또 강물 속에 아무리 많은 연어가 있어도 필요한 양 이상을 잡지 않았다. 그 이상을 취하면 다음 해에 회귀하는 연어의 양이 줄어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원주민은 이같은 자기 절제를 통해 주위환경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든 것은 하나’라는 철학이 자리했다.
이들은 나무·숲·곰·연어·고래는 물론 비·바람·천둥·번개까지도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자신들도 그 같은 관계의 일부라고 믿었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를 과도하게 채취하면 그 영향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모두에게 미친다고 믿었다.
즉 숲을 베면 곰과 연어가 사라지고, 바다에서는 연어에 의존해 있던 고래가 사라진다고 믿었다.
고래가 사라지면 그 영향이 결국 물질적·정신적으로 고래에 의존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돌아온다고 믿었다.

이들이 지속가능하게 유지한 자연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여년 전의 일이다.
유럽에서 온 백인이 원주민의 전통 영토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인간은 자연환경의 개선이나 진화를 위해 신이 선택한 도구라고 믿었던 백인 개척자는 숲이나 자연환경을 지배·파괴 또는 변형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백인 정착자에게 자연은 물질적 가치를 지니는 천연자원일 뿐이었다.

미국 산림학자 알도 레오폴드(1887~1948년)의 ‘토지 윤리’는 다음과 같은 글로 시작한다.

“오랜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온 오딧세이는 자기가 집을 비운 사이 비행을 저지른 하녀들을 무더기로 목을 매달아 처형했다.”

하녀는 주인 오딧세이가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고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던 자기 소유 재산이나 물건과 같은 것이었다.
이 글에서 알도 레오폴드는 백인이 역사적으로 자연에 대해 취한 태도가 오딧세이가 하녀에게 한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토지 윤리’로 환경 윤리라는 분야를 개척한 알도 레오폴드는 그동안 인간이 소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 자연을,
인간이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지녀야 할 대상으로 파악했다.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 것이다.
자연은 어느 누구의 재산이나 소유물이 될 수 없으며 인간 사이에 성립된 윤리적 의무는 그가 ‘토지’ 라고 표현한 동물·식물·곤충은 물론 심지어 개울과 호수에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도 레오폴드 이후 서구사회에선 인간 이외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현재 일부 동물이나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종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법 제도가 마련돼 있다.
또 고통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식물뿐만 아니라 개울, 호수, 늪지, 심지어 바위까지로 그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알도 레오폴드는 “생태계가 ‘건전하게’ 유지되고, ‘안정적’이며,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며 이를 해치거나 손상시키는 행위는 옳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철학은 인간을 생태계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자연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심층 생태학 또는 근본 생태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알도 레오폴드로부터 시작한 환경 윤리사상은 사실상 아메리카 인디언의 ‘모든 것은 하나’라는 철학의 현대적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껍질을 벗길 때도 나무의 허락을 얻었으며, 나무의 건강을 위해 줄기의 3분의 1만을 벗겼으며, 회귀하는 연어의 일부만을 잡았던 아메리카 인디언.
자신이 나무·곰·고래와 다르지 않으며 이들의 일부라고 믿었다.
알도 레오폴드가 동식물은 물론 개울과 호수까지 생태계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했던 것과 일치한다.

인간이 환경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가 원하는 양과 속도로 자라 주지 않는 자연의 생산력을 탓했다.
따라서 환경 문제의 해결 방법도 자연의 생산 과정에 개입해 자연의 생산력을 높이는 데서 찾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은 커다란 힘을 발휘했다. 자연의 리듬이나 질서에 역행하는 이같은 방법은 생태계의 건전성이나 지속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환경 문제를 오히려 더 악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가 원하는 속도로 자라지 않는 자연의 생산력은 결코 환경 문제가 될 수 없다.
환경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문제이다. 결국 환경 문제의 해결도 스스로를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달려 있다.
환경 윤리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그랬듯이 우리 스스로를 절제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자료출처 : 2004년 10월25일 경향닷컴에서
〈탁광일/전 SFS 캐나다 교수〉
〈공동기획: 산림청·산림조합중앙회·숲과 문화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