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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자연, 환경, 숲

13.숲의미학

by 2mokpo 2009. 9. 25.

산림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과학문명의 발달과 이용, 이에 따른 시대사조 흐름에 따라 변화과정을 겪어왔다. 원시 시대에는 산림에 대한 신성함과 숭배감을 가졌고, 이후의 산업화 시기까지는 자연의 훼손 역사라 할 수 있는 인간본위적 자연관이 팽배했었고, 최근에는 이의 각성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하는 가치관이 성립되어가고 있다.

자연숭배 사상이 지배하였던 초기 희랍시대의 경우 미의 개념은 매우 광범위한 범주로 해석되었다. 당시 미의 개념은 아름다운 사물이나 형태뿐 아니라 색채, 소리, 아름다운 사고, 관습까지를 포함하였다.

이후 스토아 학파에 와서 기존의 광의적 미 개념이 축소되어 시각이나 청각에 즐거움을 주는 것, 적당한 비례와 매혹적인 색채를 가진 것이라는 순수 심미적 개념으로 미를 파악하였다.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 우위의 사조가 강조되던 시기였다. 미의 인식 또한 초기 희랍시대의 이성적 중심 사고에서 시청각을 강조하는 감각적 중심 사고를 중시하는 측면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미개념은 자연에 대한 개발 훼손이 심각한 상태로 진행된 현대에 이르러 더욱 축소되어 형태나 색채를 중시하는 시각적 측면의 감각적 지각을 더 강조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의 지나친 외모 중시 경향이나 말초신경적 감각 선호 경향은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산림과 같은 자연에 대한 오랜 훼손역사와 이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에서 기인했음을 곰곰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내 산림은 국토의 65%의 높은 면적 비율뿐 아니라 특이하고도 다양한 지형과 형형색색의 질감,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가 어우러진 인체 5감각을 통한 다양한 미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심미적 체험 조건을 갖고 있다. 이들 산림의 심미적 가치는 자연미, 사회미, 예술미로 세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산림은 자연 생물학적 속성 범위가 매우 넓으며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대규모 경관의 특성을 보유한 아름다운 자연미를 보유하고 있다. 즉 수목, 꽃, 지피식생, 야생동물, 곤충류 등의 다양한 동식물과 폭포, 기암괴석 등이 어우러져 변화무쌍한 세계를 연출하고 있다. 이들 경관 자원은 전 감각 체험, 즉 시각적 체험뿐 아니라 새나 곤충·바람·물소리와 같은 청각적 체험, 수목·야생초화류 향기의 후각적 체험, 수피의 따듯함·물의 차가움·공중 습도 등을 지각할 수 있는 촉각적 체험, 그리고 약수·산채·열매의 미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다양한 자연미 체험을 통하여 시나 회화, 음악 등의 예술적 감흥과 같은 영적 심성이 생성되는 것이다.

산림의 사회미는 자연 순환 질서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 본성의 욕망에서 벗어난 넉넉하고 포근하며 안정된 선(善)의 경지에 이르게함을 말한다.

산림 환경은 여러 물리적 속성들이 서로 복잡하게 엉켜 있는 혼란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조화와 균형의 생존 순환 질서가 존재한다. 흔히 우리가 복잡한 산림을 혼돈스럽게 지각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림을 방문하면 이러한 자연질서의 지각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비자연적 생활의 굴레를 벗어나 어머니 품에 안긴 갓난아이처럼 맑은 자연 품성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산림의 사회미요, 선(善)의 마음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인이 없다”는 말은 지나친 표현이 아닌 것이다. 산림은 우리의 사회 안정과 사회 윤리나 질서를 바르게 정립할 수 있는 순화 및 교육적 가치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 예로 도시 거주 어린이와 시골 거주 어린이를 대상으로 조사 연구한 결과 시골 어린이들은 나무를 놀이장소로 인식하는 데 비해 도시 어린이들은 건축 재료의 목재 자원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발견하였다. 이는 도시 어린이들의 경우 산림내 놀이 기회나 산림과 같은 자연의 접촉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기술 문명의 발달 그 자체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거나 가치관의 폭주와 갈등을 부정적 시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심화되어가는 가치관의 혼란과 정신세계의 황폐화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의 기능 역할이 바로 아름다운 산림 조성과 이의 활용에 있다는 점을 강조해둔다.

산림의 예술미적 기능은 풍부한 상상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모방과 창조성에 기인한다. 산림은 여러 형태 요소들인 능선 수간 계곡 임도 등의 선형 요소, 수종 표고 계절에 따른 색채 요소, 그리고 각 자연물과의 구성 결합, 거리 등에 따른 질감 요소를 보유하고 있다. 형태적으로는 삼각구도의 안정감과 원형의 원만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직선의 강한 느낌과 곡선의 부드러움이 서로 안정되게 공존하고 있다. 더욱이 수종, 기상 변화, 계절에 따른 다양한 색채감과 자연물의 구성, 그리고 조망 지점 등에 따른 여러 가지의 변화된 속성을 지각할 수 있다. 산림의 이러한 시공간적 다변화 특성은 우리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동서 고금을 통하여 시와 소설의 문학 작품이나 미술, 음악, 무용, 건축 등 우리 인간 예술 분야에 산과 나무를 소재로 하거나 이의 모방, 창조를 통한 헤아릴 수 없는 작품이나 건축물들이 이를 말해준다. 산림은 우리 인간에게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의성을 발휘케 하는 심미 예술적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 심성의 발원지요, 사회 안정과 질서의 원천이며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성 발휘의 근원지인 산림 경관 자원의 적절한 활용은 긴요하다. 우리 삶의 질 개선과 긍극적인 행복 추구, 그리고 올바른 윤리관의 정립과 지속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주변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하며 산림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잠재 자원임을 다시금 인식해야 한다.

자료출처 : 경향신문 2004 10/04

〈송형섭/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