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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by 2mokpo 2017. 12. 17.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시애틀 추장
수콰미쉬족과 두와미쉬족


내 이름은 ‘시엘트’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온, 지금 당신들 앞에 서 있는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은 나의 부족이며

나는 그들의 추장이다. 우리는 이곳에 왜 왔는가? 연어 떼를 구경하기 위해다.

올해 첫 연어 떼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연어는 우리의 주된 식량이기 때문에 연어 떼가 일찌감치 큰 무리를 지어 강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것을 보는 것만큼

우리에게 즐거운 일은 없다. 
그 숫자를 보고서 우리는 닥아 오는 겨울에 식량이 부족할 것인지 여부를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더없이 기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연어 떼가 햇살에 반짝이며

춤추는 것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았다.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이 우리를 찾아올 것을 우리는 짐작한다.


우리가 무리를 이루어 몰려온 것을 보고 전투를 벌이려고 왔다고 생각하진 말라.
우리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나는 당신들이 우리 땅에 온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 당신들과 우리는 모두 이 대지의 아들이며,

어느 한 사람 뜻 없이 만들어진 이가 없다.


그런데 한 가지 당신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땅을 마구 파헤치고, 어디든 건물을 세우고,

거리낌 없이 나무를 쓰러뜨린다. 그래서 행복한가? 

얼굴 흰 사람들이 사는 도시는 얼굴 붉은 사람들의 눈에는 고통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이 야만인이라서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도시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보기 힘들다.

봄에 나뭇잎이 돋는 소리를 듣거나 곤충의 날갯짓하는 소리를 들을 만한 곳이 없다.


당신들의 도시에서 들리는 소음은 귀를 욕되게 할 뿐이다.
인디언들은 수면으로 내리꽂히는 부드러운 바람소리를 좋아한다. 한낮에 내린 비에 씻긴 바람 냄새를 좋아한다.

소나무 향기도 마찬가지다.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공기는 더없이 소중한 것니다. 

동물이든 나무든 사람이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똑같은 공기를 나눠 갖기 때문이다.


죽은 지 며칠 지난 사람처럼 당신들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악취에도 아무 반응이 없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잠자리를 계속 파헤치고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인가 당신들은 스스로의 폐허에서 숨이 막혀 깨어날 것이다.


들소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야생마는 모두 길들여지고, 숲의 은밀한 구석까지 사람들의 냄새로 가득하다. 

그리고 산마다 사람의 목소리를 전하는 전깃줄이 어지럽게 드리워져 있다. 덤불숲은 어디에 있는가? 없어져 버렸다.

독수리는 어디 있는가? 사라져 버렸다.


들짐승이 사라지면 인간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들짐승이 저 어두운 기억의 그늘로 사라지고 나면 인간은 홍의 깊은 고독감 때문에 말라죽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짐승에게 일어나는 일은 똑같이 인간에게도 일어난다.

당신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러니 사냥이니 날쌘 동작이니 하는 것에 대해 굳이 작별을 고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만이 시작 되었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남는 일’에는 더없이 막막한 곳일 따름이다.


연어 떼를 보았으니 이제 나와 나의 부족은 행복한 얼굴로 돌아간다.

어쩌면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은 짐작에 그칠 뿐, 나의 부족에게 다신 찾아오지 않을 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당신들 얼굴 흰 사람들에게 밀려, 살아남기 위해 막막한 겨울 들판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본 연어 떼의  반짝이는 춤은 나의 부족은 잊지 못할 겁이다.
이것으로 내 말을 마친다.


 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류시화 엮음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