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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

by 2mokpo 2021. 1. 27.

세수

남 보라고 씻는가? 머리 감으면 모자는 털어서 쓰고 싶고 목욕하면 헌 옷 입기 싫은 기 사람 마음이다. 그기 얼마나 가겠노만은 날마다 새 날로 살라꼬 아침마다 낯도 씻고 그런 거 아이가. 안 그러면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낯을 왜 만날 씻겠노?” 18

 

제 길

선생님이신 아들에게 한 어머님 말씀

니는 아이들이 말 안 들어도 넘 아이들을 니 맘대로 할라고 하지 마라이.

예전에 책만 보면 졸고 깨면 낙서하는 아아가 있더란다. 선생이 불러내어 궁디를 때리고 벌을 안 세웠나. 그 아아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자세히 보니 손꾸락으로 눈물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더란다.

산도 그리고 새도 그리고 --그래서 선생이 썽이나서 멀캤단다. 에라이 이 망할 넘아. 니는 그림이나 그리서 먹고 살아라! 그카니 세상에! 그 아아가 울음을 뚝 그치고 혜죽 웃음서 예! 카더란다. 27

 

그나저나 개구리 소리 들리는 요때는 방에서도 물 잡어논 냄새가 난다. 방에 누우면 천정이 논처럼 보이는 지라. 33

 

처서 지나면 솔나무 밑이 훤한다 안 카더나. 그래서 처서 전에 오는 비는 약비고, 처섯비는 사방 십리에 천 석을 까먹는다 안 카나. 나락이 피기 전에 비가 쫌 와얄 낀데 42

 

그나저나 무신 일이든 살펴봐 감서 해야 한다. 까치가 집짓는 나무는 베는 기 아니다.

(까치는 애먹인다고 밉다 하더니만.)

뭐든지 밉다가 곱다가 하제. 밉다고 다 없애면 시상에 뭐가 남겠노?”

낫이나 톱 들었다고 살아 있는 나무를 함부로 찍어 대면 나무가 앙 갚음하고 괭이나 삽 들었다고 막심으로 땅을 찍으면 땅도 가만히 있지 않는 기다. 93

 

봄은 봄이다. 저기 좀 봐라. 봄산은 통째로 큰나무다. 저 밑에서 풀색들이 산나무를 타고 찬찬히 밀고 올라으는 기 보이제? 온 산이 나부낀다.(부산하게 움직인다). 100

 

뻐꾸기가 처음 울고 세 장날이 지나야 풋보리라도 베서 먹을 수 있는데 102

 

들깨는 해 뜨기 전에 털어야 꼬타리가 란 뿌사지서 일이 수월코, 참깨는 해가 나서 이슬이 말라야 꼬타리가 벌어져서 잘 털린다.잠시도 쉬지 못하게 조물주가 그리 만들어 놨어 103

 

고추 모종은 아카시 핀 뒤에 심어야 된다. 배꽃 필 때 한 번은 더 추위가 있다.108

 

시상에! 짐승을 키아도 저러는 기 아이라, 마른 물꼬 밑에 올챙이처럼 몰아넣어서 총총 심는 듯이 키우는데 우째 병이 안 나겄노?

안 볼라 해도 절로 눈이 가는 걸 우짜노? 아무리 솔아도 사람은 기지개 켤 만큼, 닭은 헤비고 보금자리 칠 만큼, 소는 뿔박기 할 만큼은 있어야 살 수 있는 긴데 아무리 짐승이라 캐도 옴다시도 못하게 저리 총총 키우는데 우째 병이 안 나겠노?

요새 사람들은 마음이 비좁아서 짐승도 저리 비좁게 키우는 기라.”123

 

팔월은 말라야 좋고 정원은 질어도 좋다.150

 

세상에 씰데없는 말은 있어도 씰데없는 사람은 없는 기다. 하매. 나뭇가지를 봐라.

곧은 건 괭이자루, 휘어진 건 톱자루, 갈라진 건 멍에, 벌어진 건 지게, 약한 건 빗자루, 곧은 건 울타리로 쓴다.

 

나무도 큰 넘이 있고 작은 넘이 있는 것이나, 여문 넘이나 무른 기 다 이유가 있는 기다.

사람도 한가지다. 생각해 봐라. 다 글로 잘나면 농사는 누가 짓고, 변소는 누가 푸노?

밥 하는 놈 있고 묵는 놈 있듯이, 말 잘 하는 놈 있고 힘 잘 쓰는 놈 있고, 헛간 짓는 사람 있고 큰 집 짓는 사람 다 따로 있고, 돼지 잡는 사람, 장사 지낼 때 앞소리 하는 사람 다 있어야 하는 기다. 하나라도 없어 봐라. 그 동네가 잘 되겠나.

내 살아보니 짜달시리 잘난 넘도 못난 넘도 없더라

 

하기사 다 지나고 보니까 배우나 못 배우나 별다른게 없더라. 사람이 살고 지난 자리는 , 사람마다 손 쓰고 마음 내기 나름이지 많이 배운 것과는 상관이 없는 갑더라. 거둬감서 산 사람은 지난 자리도 따시고, 모질게 거둬들기만 한사람은 그 사람이 죽고 없어도 까시가 돋니라.

우짜든지 서로 싸우지 말고 도와 감서 살아라 캐라. 다른 사람 눈에 눈물 빼고 득 본다 싶어도 끝을 맞춰 보면 별거 없니라. 누구나 눈은 앞에 달렸고, 팔다리는 두 개라도 입은 한 개니까 사람이 욕심내 봐야 거기서 거기더라. 갈 때는 두 손 두 발 다 비었고.”

 

말 못하는 나무나 짐승에게 베푸는 것도 우선 보기에는 어리석다 해도 길게 보면 득이라. 모는게 제 각각, 베풀면 베푼대로 받고, 해치면 해친 대로 받고 산지라 하매 사람한테야 말해서 뭐하겠노? 159----

 

 

 

살아보니 그런대로 괜찮다 중에서--- 지은이: 구술 김상순  홍정욱 옮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