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손철주 에세이 『꽃 피는 삶에 홀리다』

by 2mokpo 2016. 10. 18.

스님이 토굴로 출발하며 내게 전화하셨다.

잘 가시라 잘 있어라 인사 끝에,

송한필의 시가 탐났다고 이실직고했다.

스님은 알은 척하며 한마디 던지신다.


“피고 지는 꽃 연연하지 말고 비바람 탓하지 마소.”
그게 안 주신 이유냐고 투덜댔더니,

스님은 내가 잊고 있던 시 하나를 기어이 상기시켰다.

고려 문인 이규보의 시다.


種花愁未發   꽃 심으면 안 필까 걱정하고
花發又愁落   꽃 피면 또 질까 걱정하네
開落摠愁人   피고 짐이 모두 시름겨우니
未識種花樂   꽃 심는 즐거움 알지 못해라


스님이 떠나도 새날이 오니 알겠다.

갈 것이 가고 올 것이 온다. 
 15~16 쪽


'측근은 가까운 곁 사람이다. 요즘 그 측근들이 말썽을 피운다고 언론이 나무란다.
그렇지, 문제는 항상 가까운 데서 터진다. 측근과의 이격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


측근도 지나치게 가까우면 치정관계가 된다.

너무 알고 지내다 탈난다. 제대로 알려면 떨어져야 한다.

치정의 '치'는 속자로 '痴'다. 파자(破字) 해 보면 알아서知 병病이 된 정' 이다.

너무 일고 지내다 탈난다. 제대로 알려면 떨어져야 한다.

청와대든 공원이든 지하철이든, 딱 달라붙은 측근들은 눈꼴이 시다.

46쪽

손철주 에세이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