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가장 흐드러지게 광기를 보여준 화가로 알려진 호생관 최북(毫生館 崔北·18세기)일 것이다.
그는 우선 호부터가 범상치 않다. 호생관, 글자 그대로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뿐만 아니다. 그의 자(字)를 성기(聖器)라 지은 것이나 자신의 이름 북(北)자를 둘로 쪼개 칠칠(七七)이라 불렀던 것이 그렇다.
최칠칠, 지독히도 가난했던 그는 그림을 팔아 밥과 술을 구했다. 그 절박함은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한 집착과 광기로 이어졌고….
그는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애꾸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의 세도가가 그의 붓 솜씨를 트집 잡자 이에 분노한 최북, “네 까짓 놈의 욕을 등을 바에야 ”하며 자신의 눈을 찔렀던 것이다. 불같은 성미,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광기가 뚝뚝 묻어나는 대목이다.
대신 가난한 이에게는 백동전 몇 닢에도 그림을 그려 주었던 화가---
최북에겐 호탕한 면도 있었다. 금강산 구룡폭포에서 자연과 술에 한껏 취해 “천하 명인 최북이는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면서 몸을 던졌던 최북. 그는 또한 매일 말술을 마실 정도로 못말리는 주당이기도 했다.
최북의 예술적 광기는 죽음에서 절정을 이룬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술에 취한 겨울 어느날, 성벽 아래 잠들었다가 그만 폭설이 내려 얼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천재 예술가의 비극적 종말이었다.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은 최북의 비극적 광기가 잘 드러난 작품. ‘눈보라 속에서 돌아온 사람’이란 제목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낭만적이면서도 음산하다. 눈 속에서 죽어갈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 강풍에 지친듯 한쪽으로 휘어진 나무의 묵선(墨線)에 최북의 광기와 고집, 피곤한 삶이 흠씬 배어 있다.
발작을 일으켜 한쪽귀를 자른 네델란드 출신의 후기 인상파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최북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현실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