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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한국화가)

김정-숙조도

by 2mokpo 2024. 11. 27.

충암沖庵 김정金淨(1486~1521)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오늘날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충암은 22세 되는 150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일찍부터 관로에 진출했으며 정암 조광조와 함께 신진 사림파를 대표하는 문신이 되었다. 그는 성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올곧은 말로 상소를 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한때 충청도 보은으로 유배되기 도 했다. 그러나 얼마 뒤 다시 등용되어 30대의 나이에 부제학, 이조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의 요직을 거쳐 형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면서 진도를 거쳐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귀양살이 2년 만에 다시 정변이 일어나면서 그 화가 충암에게 미쳐 끝내는 사약을 받고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불과 36세의 나이였다. 충암은 그림으로도 유명했다. 당시 선비 사회에서는 그림을 잡기의 하나로 보던 생각이 점점 바뀌면서 회화도 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정을 발하는 고상한 취미라는 인식이 퍼져가고 있었다. 이에 문인들은 여기로서 그림을 즐기며 회화의 세계에 동참하는 일이 많아졌다. 충암은 새 그림을 잘 그린 일과예의 선비화가였다. 그중 가시나무 가지에 매달린 새를 그린 그림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어둔 녘 잠자리에 드는 두 마리 새를 그린 <숙조도宿鳥圖>로서, 잠든 새는 평화롭고 안온한 서정을 일으키기 충분하여 일찍부터 화가들이 즐겨 그려온 소재였다. 이 그림은 그동안 '이조화명도二鳥和鳴圖' 또는 '산초백두도山椒白頭圖'라는 이름으로 책에 소개되어왔다. 가시가 어긋난 것으로 보아 산초나무 가지에서 한 마리는 가슴에 부리를 묻고 이미 잠에 들었고, 다른 한 마리는 거꾸로 매달린 채 잠든 새를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당신 벌써 잠들었어?"라는 표정이다. 새의 몸동작, 예쁘게 생긴 새의 날개, 부리, 가슴 등의 묘사도 정확하다. 화면상에 은은하게 퍼져 있는 청색 담채는 그윽한 밤기운을 느끼게 한다. 어떤 특별한 장식도 가하지 않았기에 조용한 정취가 감돈다. 참으로 담백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사랑스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