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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 사조 명화/매너리즘

틴토레토(Tintoretto)

by 2mokpo 2023. 9. 11.

 

1519년 베네치아에서 염색공의 아들로 태어난 틴토레토의 본명은 야코포로부스티(Jacopo Robusti)인데 당시 이탈리아 이름은 태어난 도시 혹은 가업 등이 이름처럼 사용되기도 했으므로 염색공을 ‘Tintore’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말로 어미에 어린이라는 의미의 'tto'라는 단어를 붙여, 그의 이름이 어린 염색공’, 즉 틴토레토(Tintoretto)가 된 것이다.

아버지를 도와 염색공 일을 하던 그는 미술에 대한 특출한 재능으로 당시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티치아노의 견습생으로 들어갔지만, 문제를 일으켜 쫓겨났으나 르네상스 거장들의 그림들을 독학으로 배워나갔으며 21살이 된 1539년부터는 독립적인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큰 성과를 보이지 않다가 1548년 작품 성 마가의 기적을 통해 그의 이름은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티치아노에게 퇴출당한 이유는 스케치에 유화를 바르는 불문율을 깨고 유화로 빠르게 마무리하는 등 지나치게 빨라 허술하고 절제가 부족하다고 비판받았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살펴보면 대충 그렸다고 하기에는 완숙해 보이는 명암법과 최초로 인물에 격렬한 운동감을 묘사했다. 허술하기 보다는 비범하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당시의 화풍과 다르다는 점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작품을 선보였다. 1550년에는 여러 성당과 종교단체의 그림 의뢰로 창세기’, ‘목욕하는 수잔나등을 그렸다. 1560년대에 이르러서는 마돈나델로르토 교회와 콘타리니가 예배당의 장식화에 참여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1594산 조르지오 성당(Basilica di San Giorgio Maggiore)에서 완성된 최후의 만찬은 틴토레토 미술의 정점을 찍는 작품이다. 재밌는 건 서양 미술 역사상 8천 번이나 그렸다는 최후의 만찬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구도와 화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의 저녁식사처럼 보이는 분위기 속 성찬 의식 모습이다.

보통 상석에 위치하는 예수의 위치는 대각선으로 뻗어 있는 테이블의 3분의 2지점에 위치해있으며, 천장에 매달려 있는 기름 램프를 통해 후광이 있는 예수 외에도 다양한 인물에게 램프 역광을 주어 어둠 속에서 인물들을 식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서민들과 테이블에 있는 인물들 간의 지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껏 그려져 온 최후의 만찬 중에서는 가장 서민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거의 인생의 절반을 베네치아풍의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틴토레토. 유별난 성격처럼 그의 화풍 역시 대세와는 달랐기에 사람들에게 거리감이 있었지만, 말년에 결국 스승 티치아노 만큼의 존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유별난 것은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지만 그 유별난 점이 꾸준히 반복되고 조금씩 발전된다면, 훗날에는 위대한 성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이해하는 사회풍토가 여전히 존재한다. 틴토레토의 사례를 통해 다르다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우리 사회 풍토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 윕뉴스 김태웅 기자

 

최후의 만찬 

틴토레토의 말년 작품인 1592~1594년 그림은  구성 공식에서 크게 벗어났습니다. 장면의 중앙에는 사도들이 아니라 접시를 들고 있는 여자와 식탁에서 접시를 가져가는 하인과 같은 보조 인물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앉은 탁자는 가파른 대각선을 따라 공간으로 물러납니다. 더욱이, Tintoretto의 그림은 빛을 보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천장의 빛과 예수의 후광으로 인해 모호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 그 장면 위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맴돌고 있습니다. Tintoretto의 최후의 만찬은 복잡하고 근본적으로 비대칭적인 구성에 매너리즘 장치를 사용합니다 . 역동성과 일상에 대한 강조(배경은 베네치아 여관과 유사)에서 그림은 바로크 양식으로 향하는 길을 가리 킵니다 . "감상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 극적인 장면의 능력은 반종교 개혁 이상과 종교 예술의 교훈적 성격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믿음과 잘 부합했습니다.

Paradiso는 베니스 대평의회가 열렸던 총독 의 궁전 본당을 덮고 있는 캔버스에거대한(22 x 9미터) 유화 입니다 . 이 그림은 세계에서 캔버스에 그린 가장 큰 그림 중 하나이며 베네치아 염색공의 아들인 Tintoretto로 더 잘 알려진 Jacopo Robusti 가 그린 것입니다.   무대 중앙에서 창공을 향한 빛의 길이 열려 의인의 영혼이 (천사의 도움으로) 올라가고 신의 은총이 총독에게 내려올 수 있습니다 . 이 길의 중심에는 반쯤 가려진 대천사 의 빛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 그 구성에는 약 500개의 인물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존 러스킨은 "나는 이 그림이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예술 작품 중 가장 귀중한 작품이라고 주저 없이 주장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Tintoretto의 작품 중 다수는 해당 위치에 너무 중요하거나 크기가 너무 커서 다른 전시물로 이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작품이 이탈리아 베니스에 남아 있습니다.

 

가나에서의 결혼(1561)
갈릴리 바다의 그리스도 (c.  1575-1580 )
노예의 기적 (1548)
베니스로 옮겨진 성 마르코의 시신 (  1564 년경 )
성 마르코의 시신 발견(1564년경)
아솔라 전투
엠마오에서의 만찬(1542년 또는 1543년)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1577년경)
은하수의 기원 (1575)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C. 1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