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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 사조 명화/르네상스

티치아노 베첼리오

by 2mokpo 2023. 3. 18.

티치아노 베첼리오(이탈리아어: Tiziano Vecellio, 1488-90년경 ~ 1576)는 북이탈리아 피에베 디 카도레에서 출생한 이탈리아의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했던 화가이다. 그의 창작 시기는 베네치아 공화국 회화의 황금기와 맞아 떨어졌다. 그 당시 베네치아는 경제적,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티치아노는 9살이 되었을 때 베네치아로 가서 젠틸레 벨리니와 조반니 벨리니 형제에게 사사했다. 1513년 그는 산 사물엘레에 자신의 작업장을 열었고, 유럽 전역에서 찬양을 받는 화가로 발전했다. 1515년경에는 명백한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이 되어 지식인들의 찬사를 들었고 소장가들의 찬미를 받았으며 귀족이나 궁정의 부름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1520년대에 그의 명성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베네치아에서 주로 의뢰를 받는 것 외에도 , 피에트로 아레티노를 사실상의 대행인삼아 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는 초상화가로서 입지를 세웠다. 1533년 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고 그의 궁정 화가로 임명되었다. 1545년 티치아노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초청을 받아서 로마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미켈란젤로를 만났다. 1548년과 1550년 티치아노는 카를 5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를 따라서 제국 의회가 있는 아우크스부르크에 갔다. 상당히 고령이었던 티치아노가 1576년 페스트로 죽었을 때 그는, 베네치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화가였다.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별 가운데 있는 태양'이라고 불렸던 티치아노는 646점의 작품을 제작한 그사 살던 시대에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아주 생산적인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초상화, 풍경화, 신화적 소재를 다루고 종교적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제작했다. <성스런 사랑과 세속의 사랑>, <성모 승천>, <바쿠스의 축제>,우르비노의 비너스등이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이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색채주의며, 그는 일생 동안 그런 특징을 유지했다. 기나긴 생애의 마지막 무렵 그는 극적인 양식의 단절을 완수했고, 그것은 이미 바로크적 특성을 향해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티치아노의 작품은 모든 중요한 수집품, 예를 들면 바티캄 미술 소장품에 포함되어 있었다. 대귀족, 데스테 가문, 곤차가 가문, 파르네세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과 같은 지배자 귀족 가문들도 자신들의 소장품을 위해서 수 많은 작품을 사들였다. 티치아노의 작품은 그가 살아 있던 동안에도 판화와 복사본의 형태로 수용되었다. 랑베르 수스트리스(Lambert Sustris)나 자코포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와 같이 16세기의 명망있던 화가들은 그를 모범으로 삼았다. 그의 화법과 특히 그의 색채 처리는 그의 동시대 화가들만이 아니라 후세대의 화가들에게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범위는 페터 파울 루벤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앙투안 와토를 거쳐 외젠 들라크루아까지 이어졌다. 출처 위키백과

캔버스에 유채 118x97cm,

티치아노의 걸작 중 하나다. 티치아노가 막달라 마리아를 처음으로 그린 것은 1531년의 일인데 그 작품은 지금 피티 미술관에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쯤 지나 제작한 에르미타지의 그림에는 이 화가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놀랄만한 가락, 고양(高揚)된 정서성, 회화적으로 폭넓고 활달한 분망함이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이미지의 정서를 강조하는 풍경이 이전의 작품에 비해 커다란 역할을 하기 시작하고 있다. 진심으로 참회의 충동에 사로잡힌 아름다운 여인과 바람에 휘몰리고 있는 나무가 낙조(落照)의 햇살을 받아 어둠 속에 떠오르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의 참회하는 눈물과 눈동자 속에 머문 낙조의 햇살이 대조를 이루면서 의미를 던지고 있다.

비너스와 큐피드, 119×195cm, 캔버스에 유화, 피렌체 우피치美術館

많은 학자들은 이 작품의 연대를 1545년경으로 잡고 있지만 베른슨은 1555년 이후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파루키니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또한 파루키니는 부분적으로 화공의 손이 더해졌다고 보기도 한다.

티치아노의 작품으로 보이는 같은 포즈의 비너스 상은 여기저기에 꽤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은 프라도와 베를린의 미술관에 있는 왼손으로 오르간을 타고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문제는 요컨대 티치아노의 진필 (眞筆)이 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없느냐에 그 평가가 가해질 일이겠다. 어찌됐든비너스 상은 당시 다비드의 그림과 함께 고객의 평가를 얻어 꽤 많이 제작되었음에 틀림없다.

지오르지오네가 기선을 잡고 시류(時流)의 취미로 해서 태어난 이런 이교적 여성의 나체상은 종교화, 초상화, 풍경화 등 여러 종류의 그림을 그린 티치아노에게도 득의(得意)의 분야였고 또한 티치아노의 색채주의가 자유롭게 펼쳐진 가장 적절한 분야이기도 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년경, 캔버스에, 피렌체 우피치 美術館, 119×165cm

이 작품을 우르비노의 비너스라고 부르는 까닭은 1631, 메디치가에 양도된 우르비노의 델라 로베르가의 컬렉션 속에 이 작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티치아노는 이것을 그리면서 틀림없이 자기가 붓을 대서 완성한 지오르지오네의 <잠든 비너스>를 의식했을 것이다. 같은 주제를 갖는 같은 구도의 작품이지만 지오르지오네는 자연 속에 무의식적으로 벗은 몸을 뉘고 있어 하늘에서 태어나 떨어진 것 같은 여성의 이상미(理想美)를 표현한 데 비해 티치아노는 현실의 집안에 있는 하나의 여성을 그렸다는 점이 서로 같지 않다. 이 작품이 초상화일 것이라는 추측도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다. 티치아노는 지오르지오네의 평온하고 서정적인 전원 정서를 베네치아 시민의 실내로 바꾸어 한층더 화려한 색채로 음악적 표현을 더하고 있다. 분명히 지오르지오네에게 배워 지오르지오네의 시정 (詩情)을 그대로 보이면서도, 활동적이고 늠름해 보이는 신체 묘사며 현실적인 실내 설정 등 전체적인 점에서 느낄 수 있는 현실화의 상위(上位), 티치아노의 특성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30년이라는 지오르지오네와의 시대 간격을 보여준다.

봄의 여신, 1515-16,  유화, 63x79cm

티치아노는 초기인 1510 년대 작품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올린 여인상을 몇 장 남기고 있는데 이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런 종류의 여인은 성서나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 혹은 풍자적인 여성상뿐인데, 이 모든 것은 당시 베네치아 여인의 이미지에서 티치아노의 정신에 자리 잡은 이상적 미인상이다. 티치아노의 여인들은 지오르지오네가 그린 인물처럼 감미롭고 명상적인 맛을 갖지 않은 반면 보다 당당한 고전적 골격을 갖고 있다. 새롭게 가미된 심리적 동태와, 보다 개방된 형식에 의해 티치아노는 자신의 개성적 화풍을 쌓아 나갔다. 이렇게 도달한 자유로운 화경(畵境)무엇보다 먼저 색채가 더욱 빛나고 찬란한 관능성이 화면 구석구석에 넘쳐흐르게 된 것이다. 희미하게 홍조가 더해 가는 얼굴이나, 벗은 가슴에 드리워진 금발 등에서 피렌체파 화가들이 도달 할 수 없었던 완전히 해방된 자유로운 감정의 표출을 보게 된다.

다나에,1545-46, 캔버스에, 69×117cm, 나폴리 카포디몬테美術館

티치아노는 제 1차 로마 여행기간 (154510~15466)에 교황청의 궁전의 일실(一室)을 장식하는 데 종사했는데 그 제작은 베네치아 색채화법 (色彩畫法)을 다시 한번 완벽하게 재생(再生)했음을 보여 준다. 이 그림은 <파울루스 3세와 그 손자>(카포디몬테 미술관 소장)와 함께 제1차 로마 체재중의 작품으로 그 원숙한 필치는 자기 화법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나에와 황금의 비, 1553년경, 캔버스에 129180cm, 마드리드 프라

 

티치아노의 <바쿠스의 축제>가 청년 시대의 걸작이라면 이 작품은 만년의 풍만하고 순후한 나체화의 매력을 발휘한 것으로 이름 높다.

소재는 그리스 신화로 아버지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에 의해 탑 속에 감금된 아름다운 다나에 곁에 제우스신이 황금의 비로 변해 몰래 들어가 건국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게 했다는 이야기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르네상스의 대가 코레지오와 더불어 티치아노는 황홀한 관능적 경지를 묘사한 명작을 남기고 있다. 화려한 홍색의 장막이 드리워진 침대 위에 도연(陶然)하게 몸을 누이고 있는 다나에의 모습은 그의 나체화 가운데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에 속한다. 반은 그늘진 아름다운 얼굴은 황금의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며 윤기 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아름다운 정념 (情念)의 희열과는 대조적으로 화면 바른 앉은 물욕투성이의 천박한 노파는 두 손을 빌려 황금의 비를 받고 있다. 암회색의 구름 갈래를 배경에 그려 넣은 이 현실의 늠름한 모습은 이미 17세기 바로크회화의 출현을 예고한다고 하겠다.

바쿠스의축제, 1 518 년 경, 캔버스에 유채, 175×193cm, 

이 작품은 르네상스 회화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걸작으로서 티치아노의 신화화 3부작의 하나다. 테세우스에 의해 낙소스 섬에 남아 있게 된 아리아드네가 상쾌한 아침 공기 속에 잠을 자고 있는데 아름다운 육체는 젊은 생명이 약동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어두운 녹색 지면에서 잠자고 있는 나부의 자세는 그 뒤, 빼어난 화가들을 유혹하여 많은 모방을 낳게 했다. 등을 받친 흰 천, 흘러내린 금발이 그녀의 살색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것도 교묘하다. 짙은 감정의 바다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가 모여 마시고 노래하고춤추는 술의 제전을 벌이고 있다. 그 무리들은 그늘 속에서도 움직이는데 왼쪽의 나체와 바른쪽의 흰 옷의 인물 및 붉은 옷의 춤추는 남녀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아리아드네와 좋은 대비를 이룬다. 종이에 적힌 수수께끼를 풀고 있는 두 미녀는 티치아노의 연인 비올란테가 모델이라고 한다. 티치아노는 선배였던 천재 화가 지오르지오네가 1510년 불과 30세에 요절하자 그를 대신해서 베네치아 화단에서 차츰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는데 이작품은 1518 년 메라라의 에스테가 알폰소 1세에 초대되어 <비너스 예찬><바쿠스와 아리아드네>와 함께 에스테가의 궁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까를로스 5세의 기마초상 1548332 ×279cm, 캔버스에 유채, 프라도 미술관,마드리드

 

독일의 묄벡 전투에서 신교도들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위풍당당한 까를로스 5...그림의 붉은 노을 배경과 화려한 색상의 말 안장 그리고 저녁 햇살을 받아 멋지게 번쩍이는 갑옷이 참 멋있게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 가지고 이 그림이 대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시간의 알레고리> 또는 <신중함의 알레고리>라고 말해진다. 알레고리란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비유하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사물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그림은 시간을 표현하기 위한 구체화인가? 아니면 신중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인가?

신중함의 알레고리, 1550-65 #1550년대 #유화 68.4x75.5cm

비너스와 아도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