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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 사조 명화/신고전주의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by 2mokpo 2023. 3. 17.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

19세기 프랑스의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미술역사상 가장 기묘하고 관능적인 여성 누드화를 그린 화가이다.

오달리스크와 여자 노예, 1839, 캔버스에 유채, 72×100cm

오달리스크의 몸매와 여자 노예의 신체의 곡선이 미적 복잡함을 갖고 화면 전체를 지배한다. 희고 부드러운 오달리스크의 상반신은 앵그르가 그린 많은 누드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으로 꼽혀진다. 뒷편에 서 있는 흑인 환관과 분수의 대비도 재미있으며 색채도 선명한 적색과 황금색에 의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치밀한 세부 묘사며 인물의 선() 등은 앵그르의 데생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 1856 #1850년대 #유화 80x163cm

위 그림 <샘>은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여성 누드 중 하나인데  군살 없는 몸매에 완벽한 비례를 자랑하는 소녀는 다소곳한 자세로 항아리의 물을 흘려 보내고 있다. 앵그르가 그린 여성 누드가 대부분 그렇듯, 소녀는 흠 하나 없이 반들반들한 대리석 같은 피부를 자랑하고 있다.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1810년대 , 유화 190x147cm 

위 그림은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라는 그림이다. 그리고 로저가 타고 있는 것은 Hippogriff라는 반은 말이고, 반은 독수리인 전설의 동물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로저라는 영웅이 야만인들에게 납치되어 바다괴물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눈물 섬  이라는 곳에 묶여있던 안젤리카라는 미녀를 구해낸다. 이 그림은 바티칸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앙리 드 바로키에라는 사람이 루이 18세 황제를 위해 주문한 그림으로, 1819년 살롱전에 전시된 후, 베르사유 궁전에 설치가 되었던 그림이다. 이 그림은 몇개의 복사본이 만들어졌고, 그중 하나는 에드가 드가가 구입하여 가지고 있다가 지금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샤를 7세의 대관식에서의 쟌 다르크, 1851-54, 캔버스에 유채, 240×178cm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쟌 다르크에 관한 역사적 고찰은 1840년대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쟌 다르크의 유죄 판결과 그 명예 회복을 위한 소송이 1841년 파리에서 발표되었다. 앵그르는 그 후 쟌 다르크를 스케치화()로 묘사하여 역사상 위대한 프랑스인들의 생애를 모아 놓은 책 플루타르크 프랑세에 발표한 일이 있으며 이 작품은 미술원장의 위탁으로 제작된것이다. 이 작품에서 앵그르는 강건하며 감각적인 기독교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으며 자신의 낭만주의적 환상과 꿈을 새로운 양식을 빌어서 쟌 다르크 상()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황위에 앉은 나폴레옹

오달리스크, 1814, 캔버스에 91×162cm

앵그르가 첫번째 이탈리아 체재시 나폴리 왕국의 카롤리네 여왕의 주문에 의해서 완성한 작품이다. 1819 년 살롱에 출품되어 신고전주의를 지지하던 평론가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은 작품이다. 그들은 앵그르가 해부학적인 사실을 고

의로 왜곡시켜 허리의 길이를 늘여 놓았다고 비난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작가의 스승 다비드를 통해 알게 된 미켈란젤로의 조각 밤과 낮에서 이러한 왜곡의 발상을 얻었다고 보고 있지만 분명하지는 않고 오히려 자연에 충실하고자 하는 화가의 개성에서 연유되었다고 보여지고 있다

앵그르, 터키탕 Le Bain Turc, 1862-63년작, 루브르 소장

앵그는 이미 1819년에 콘스탄티노플 대사의 부인인 마리 보드레 몽타규 부인이 하램의 목욕탕을 구경하고서 그 은은한 관능성을 기록한 서신 (171741일자)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대로 스케치한 일이 있다. 이 작품은 도미도프 백작이 최초로 주문한 그림인데 후에 나폴레옹 3세가 더 묘사 할 것을 요구해 1859년에 착수, 1863년에 완성된 것이다.

관능적이고 이국적인 이 나부들은 그가 82세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묘사한 모든 작품에서 나오는 나부의 종합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등을 보이며 악기를 듣고 있는 여인은 1808년작 <발팽송의 욕녀>이고 배경의 잔을 둘고 있는 여인은 1856년작 이네스 모와트 씨의 부인>이며 춤을 추고 있는 여은 19836년작 <로제와 안젤리카>에서 보여 지는 상이다. 그 이외의 여인들은 특히 1862년작 <황금시대>에 나오는 여인들의 자세와 같다. 다소 왜곡된 듯한 구성은 맹그르의 고의성이 작용된 것으로 보여진다. 여성의 나체에 대한 선의 아라베스크는 조형적 탐구라는 면에서 앵그르의 회화적 특색을 보여준다.

발팽송의 욕녀, 1808, 캔버스에 14697cm, 파리 루브르美術館

이 작품이 일반적으로 <발팽송의 욕녀> 라고 알려지게 된 이유는 이 작품을 400 프랑에 구입한 소장자의 이름이 발팽송 이었기 때문이다. 로마에 유학한지 2년 만에 로마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가장 초기의 대표작이라 볼 수 있는 이 그림은 앵그르의 스승 다비드가 구현한 강직한 긴장을 반영하는 남성적 신고전주의와는 달리 우아하고 유려한 선의 아름다움이 표현되고 있다. 고전주의적표현을 정도(正道)로 삼고 있던 앵그르는 항상 사실에서 출발했지만 해부학적인 정확한 묘사는 고의적으로 거부했다. 그것은 시대의 에로틱한 감수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감수성은 자체가 혁신적이고 낭만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