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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 사조 명화/로코코

장 밥티스트 그뢰즈

by 2mokpo 2023. 3. 2.

18세기 중반의 프랑스는 혁신적인 계몽사상과 시민계급의 성장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17세기의 전제군주는 부르주아의 대자본으로 위기를 맞게 되고 루이 14세의 경제 정책의 실패는 절대주의와 중상주의 정책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자유방임정책은 시민계급의 급속한 성장을 야기하였다. 장 바티스트 그뢰즈(Jean Baptiste Greuze, 1725~1805)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등장한 화가이다. 그뢰즈는 주로 하층민들의 생활모습을 담은 풍속화를 그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와 같은 익살이나 풍자가 없었다. 대신 그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룸으로써 그림에서 교훈을 주려고 하였다. 이런 그가 1777년에 그린 <아버지의 저주(La malédiction paternelle)>18세기 중반 프랑스의 시대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뢰즈는 과연 이 그림을 통하여 어떠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려고 하였던 것일까?

기타 연주자, 제작연도 : 1755-1760, 캔버스에 유채물감, 크기 : 71×56

이 작품은 그뢰즈가 화가로서 최절정에 올랐을 때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의 가장 놀라운 요소는 십자형 주변으로 느슨하게 배열된 구성이다. 주인공은 거의 수직적이라고 할 정도의 어색한 각도로 기타를 들고 있다. 기타가 만들어 내는 수직선은 탁자의 수평면과 남자의 바지에 그려진 넓은 줄무늬와 대조를 이룬다. 기타 연주자는 또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환하게 밝혀졌다. 그의 반짝이는 흰색 옷과 어두운 초록과 갈색으로 칠해진 주변 사물이 강하게 병치되었다. 이 작품에 보이는 이러한 여러 면모는 기타 연주자가 정신을 강하게 집중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우리가 이 그림의 시각적인 요소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기타 연주자는 기타 소리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다. 비록 그는 관람자 쪽을 보고 있지만, 사실은 관람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의 저주>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의 중심은 아버지에게 있다. 작품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처음으로 사로잡는 것은 왼쪽에 있는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백발노인이 아닌 회색 머리를 한 정정한 노인으로 묘사되어 아들에 대한 강한 분노의 손짓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서 있는 아들 또한 아버지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손을 내젓고 있다. 어머니와 딸들은 사건을 중재시키고 화해시키려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어떠한 주도권도 없어 보이는 이들의 나약한 모습은 아버지의 권위와 아들의 불복종을 더욱더 강렬하게 만들고 있다.

아들의 불복종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이는 시민계급의 성장과 전제군주제의 멸망에 대한 암시이다. 그뢰즈는 이 작품을 통하여 당시 무너져가는 전제군주제의 질서와 사회의 혁명적 분위기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벌 받는 아들.  1778년,  유화,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130 x 163 cm

이 작품은 비극적인 운명을 표현하고 있다. 오랜 기간 가족을 등지고 살던 방탕한 아들이 잘못을 깨닫고 돌아온 때가 바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뢰즈는 이 내용을 마치 문학작품처럼 분명하게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우선 화면의 오른편을 보면, 문을 막 들어서는 젊은이가 있다. 그는 온몸을 잔뜩 구부린 채, 손을 머리에 대고 슬픔과 괴로움의 눈물을 짓는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 여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젊은이를 쳐다보면서 손으로 화면 왼편의 노인을 가리킨다. 침대에 누워있는 노인의 얼굴에는 이미 생기가 없고, 주변의 여인들과 아이들은 슬픔의 몸짓을 하고 있다. 그뢰즈가 활동하던 시기는 향락적이고 화려했던 로코코(Rococo)가 점차 저물면서 다른 형식의 작품이 제작되던 때였다. 이 작품 역시 당시 요구하는 새로운 생활감정과 도덕관이 명확히 드러나 있다.

 <조용히 해 > 1759

아이가 셋인 엄마다. 가장 막둥이는 엄마 젖을 먹다가 잠들었다. 둘째는 의자에 앉아 밥을 먹다 잠들었다. 배고파서 깨면 어쩌나.. 첫째는 엄마뒤에서 화난 얼굴로 엄마 눈치를 보고 있다. 엄마랑 놀고 싶은 첫째. 엄마한테 나팔소리 들려주고 싶은데 엄마는 눈을 흘기며 말한다. "조용히 해. 동생들 자잖아. 너는 형이 되서 생각이 있는거니 없는거니." 첫째는 엄마의 사랑이 고프. 왜 엄마는 나랑은 놀아주지 않고 동생들만 보고 있는지 동생들이 밉다. 엄마는 말귀 알아먹는 첫째라도 신경을 덜 쓰고 싶다. 둘째는 아직 챙겨야 할 게 많고 막내는 것도 못 뗐다. 큰애가 나팔불면 잠든애들이 깰수도 있어 조마조마하다. 엄마는 지금 이 순간이 유일하게 숨돌릴 시간이다. 넉넉하지 못한살림에 아들 셋 애쓴다. 젊은 엄마.

과부와 신부

(중풍병자),  115cm * 146cm

버릇없는 아이
개를 안은 소년
깨진 계란
젊은 여인의 초상

 

흰 모자
바르바라 니콜라에브나 가가리나 공주
빨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