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양 미술 사조 명화/르네상스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by 2mokpo 2023. 2. 1.

건축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천재 예술가의 한사람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는 화가라면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고들 하는데 나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림뿐 아니라 인물도 훤칠하고 잘생긴 데다 예의 바르고 싹싹했다고도 한다.

너무 천재적 이어서 그런지 라파엘로는 서른일곱의 한창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갈라테이아의 승리, 1511, 프레스코 295x225cm

로마의 은행가 아고스티노 키지의 별장 과르네게 정원에 그려진 것이 이 벽화다. 바다의 요정 갈라테이아는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외눈의 거인 볼뤼케모스를 매료시켰다는이야기가 신화로 전해 온다. 두 마리의 돌고래가 끄는 조개껍질에 탄 요정의 시원스런자세와, 그 둘레의 트리

톤, 네레이스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혼연일체가 되어.고대의 사념(思念)을 한껏 담은 아침 바람과 서정시를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고대의 쾌활성과 감각적인 면이 찬양되어 <아테네 학당>의 엄격한 고전주의와 대조를 이룬다는 점, 또 회화적 공간이 당당한 건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물의 동세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화풍과차이를 보인다.

                                   발타자르 카스틸리오네의 초상, 1515~16년 경, 캔버스에유채, 파리 루브르美術館, 82*67cm
아름다운 마리아를 그린 「신성한 화가」라고까지 일컬어진 라파엘로는 초상화가이기도 했다. 이  초상화는 1515~16년경,  그가 로마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고 있던 절정기의 작품이다.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자기 나름으로 소화하고 거기다가 로마에 남아 있는 고대 미술의 감화를 받은 그의 인물화는 당당한 양감(量)과 우미(優美)한 동세(動勢)를 갖고 있다. 미묘한 광선의 울림까지를 머금고 있는 은회색(色)의 분위기에 둘러싸인《궁신론(宮)》의 저자 카스틸리오네는 조용하고도 깊은 교양의 용모를 지니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모자와 의상의 검정색, 은록색, 백색의 세색상이 커다란 공간을 교묘하게 조합하여 리듬을 낳고 있고 양감을 충실히 살리면서 심리적 표현을 풍부하게 채색하여 생동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 명화는 그 뒤에 네덜란드에 건너가게 되었는데 그것을 탐내다가 단념치 않을 수 없었던 젊은날의 렘브란트는 멘으로 데생하여 모사하기까지 했다 (1639), 루브르 미술관의 소장이 된 것은 마젤랑 재상에 의해 루이 14세의 컬렉션에 들어가면서 부터이다.

                                                     베일을 쓴 여인, 1516년경, 목판에 유채, 피렌체 피티미술관, 85x65cm
백색 메일을 머리서부터 내려쓰고 검은 머리에 빛나는 진주 장식을 한 이 여인의 모델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조카들이라는 것과 라파엘로의 연인이었던 포르나리나라는 설 등 여러 갈래가 있지만 결정적 확증은 없다. 어찌 되었든간에 이 여인상이 라파엘로가 가슴에 듣고 있던 여성의 이상적인 아름다운을 나타냈다고 하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일이다. 《시스티나의 성모〉<작은 의자의 성모〉 등 그의 후기 작품에 나타나는 성도의 모습의 이 여인의 그것과 가깝다는 사실도 그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정리된 조용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는 얼굴과 한껏 복잡한 옷주름의 어지러움을 하나하나 그려낸 의상의 표현과의 콘트라스트도 이 작품의 볼 만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검은 방울새의 성모,1506년경 , 목판에 유채,107×77cm
어린 요한이 아기 예수에게 짐은 방울새를 바치고 있기 때문에 <검은 방울새의 성모〉라고 불린다. 붉은 옷에 푸른 망토를 걸친 마리아의 머리를 점검으로 요한과 예수를 종장(長)의 삼각형 구도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 삼각형 구도는 레오나르도의 영향을 받은 듯싶다. 마리아의 얼굴 표정도 페루지아 시대의 스승이었던 페루지노의 작품에서 탈피, 레오나르도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1506년 전후의 작품으로 추측하고 있다.

                                                               기사의 꿈, 1500년경, 목판에 유채, 17. 1x17. 1cm
라파엘로는 어려서는 화가이며 시인이었던 아버지 지오반니 산치오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페루지아에 나와서는 페루지노의 문하에서 수년간 스승의 기법과 화풍을 섭취했다. 이 그림은 피렌체에 나오기 수년 전, 그러니까 페루지아풍을 충분히 익힌 1500년경의 제작으로 믿어진다. 크기나 화법상으로 보아 미의 여신들>(산티의 콘티 미술관 소장)과 함께 연속으로 그려진 것이 아닌가고추측된다. 페루지노풍의 평온하고 감미로운 시정 (情)이 화면 전체를 감싸고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불리는 <기사의 꿈이라는 제목에는 특별한 근거가 있는것은 아니다. 어쨌건 조속한 천재 라파엘로의 기량 (技術)은 스승 페루지노의스타일과 기법을 남김없이 전수받았고 여기에다 스승의 감미로움과는 다른전아(典雅)한 맛을 충분히 살려낸 것이다.

 

                                                      마리아의 결혼, 1504, 목판에 유채 170×117cm, 밀라노 브레라美術館
배경의 로톤다식 신전(神殿) 정면 프리즈 부분에 RAPHAEL VRBINAS (우르비노의 라파엘)라는 서명이 있고 그 밑 아아치 모서리에 1504년이라는 연기(年記)가 있다. 라파엘로의 초기 작품 가운데서 제작 연대가 분명한 매우 중요한 작품의 하나이다. 이 주제는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으로, 중세 이후 자주 예술 작품 주제로 취급되어 온 것이다. 각기 손에 들고 있는 마른 가지에 새싹이 나오는 자가 마리아의 남편이 될 수 있다는 신의(神)에 순종하여 마침내 요셉의 마른 가지에서 싹이 솟아나 결혼하는 두 사람과 투덜거리며 막대기를 꺾어 버리는 구혼자 등이 전통적인 수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라파엘로는 이 작품의 공간 구성에 있어서 참신하고 대담한 시도를 피하고 있다. 즉, 배경 건물의 뛰어난 원근법적 표현이나 전경의 좌우에 일렬(一列)로 나란히 선것같이 보이면서도 오행 (奥行)을 암시하는 인물 배치 둥, 교묘한 배려가 감격적으로 베풀어져 있다.

                                                                  아테네 학당, 1510, 프레스코 밑변 820cm
바디칸 궁전 장식화 가운데서는 물론, 라파엘로의 전 작품을 통해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주제는 고대 그리이스의 철인 학자들이 학당(學堂)에 모여 「인간의 학문」내지는 「이성의 논리」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배경 건물은 라파엘로의 선배인 브라만티노가 조영(造營)하고 있던 베드로 대성당의구성을 생각케 하는 당당한 것으로서 중앙에 배치한 반원통형(半圓筒形) 보울드나 아아치의 연속은 화면을 엄격한 구성적 질서 속에 통일하는 역할을 맡고있다. 그 아아치를 배경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각각 책을 끼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중세 스콜라 철학 이후 지속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르네상스기에 급속히 확대된 플라토니즘과의 대비 및 조화라는 당시의 사상 동향이 두 사람의
천인에 의해 조형적으로 훌륭하게 정착되고 있다. 플라톤은 그의 이상주의적철학을 나타내기 위해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의 관찰로 출발한다는 그의 철학을 주장하기 위해 손을 앞으로 뻗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변모, 1520, 캔버스에 유채, 410×279cm
라파엘로의 절필(絶筆)로 이름높은 이 명화가 1520년 4월 6일, 그가 열병을 않아 급사함으로 해서 미완(未完)에 그친 것은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제단화는 그가 죽기 전, 상단 부분밖에 마무리되지 않았었다. 하단은 그의 밑그림을 보고 제자인 줄리오 로마노가 완성했다. 이 제단화는 두 장면을 상하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다 (주제의 내용은 신약성서 마태오 17장 2~6절 및 14~18절). 즉 상단에는 그리스도의 변모 장면, 하단에는 마귀 들린 어린 소년이 치료받기 위해 다볼 산록에 있는 사도들의 앞에 이끌려 나오는데 결국 그들은 소년을 치료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각각 그려져 있다. 그는 이 두 화면을 교묘하게 S자형의 동적 구도(動的構圖)로 결합하여 성공적으로 감정을고양시켜 간다. 소년에 대한 사람들의 흥분과 놀라움은 그 산상(山上)에서 벌어진 기적을 본 충격과 합쳐져 극적으로 강한 동태(態)를 낳고 있다. 떠오르는 인물의 상승성이 강조되는 동시에 그 정(靜)과 대조되고 있다. 신묘한힘에 의해 빛이 충만한 속을 상승하는 그리스도의 상승력은 모세와 엘리야까지 이끌어 올릴 만큼 강력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조용함이 그속에 내재해 있다. 하단의 떠들썩함에 대한 상단의 엄숙함이 이 주제 표현의의미이기도 하다. 동적 구성에 있어서 명암이 강조된 하단 군중의 동태나 감정표현이 바로크적 경향을 보인 이 작품을 최후로, 만 37세 가 된 그 날, 라파엘로는 자신의 그 단려 우아한 고전 양식을 해체하고 승천하고 말았던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 1507년 경, 목판에 유채 71.5×55.7cm,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는 4세기 초업,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에 순교한 전설의 성녀다. 로마 황제 마크센티우스 앞에서 그리스도교를 변호, 50인의 철학자를 논파했다. 결국 그녀는 사지가 찢기는 형벌을 받게 되었으나 그녀의 기도로 마차가 부서져 버려 사지가 찢기는 대신 참수형을 당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중세에서 근세까지 자주 예술적으로 취급되었는데 신학의 규범만이 아니라 일반 학문의 수호 성녀로서 숭배되었다. 라파엘로의 이 그림은 피렌체 시대의 종말이 가까운 1507 년경의 제작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가슴에 얹은 바른손과 허리춤의 옷자락을 감아쥔 왼손을 축(軸)으로 가볍게 몸을 튼자태에 페루지아 시대의 작품에서 볼 수 없는 풍부한 청순함과 운동의 리듬이 살아 있다. 배경을 이룬 풍경에서는 레오나르도에게 배워 익힌 수법도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에는 라파엘로의 개성과 장점이 거침없이 꽃을 피우 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명의 여신

보르고의 화재

 

책을 읽고있는 성모자

그란두카의 성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