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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자연, 환경, 숲

신준환의 꿈꾸는 나무(1)

by 2mokpo 2017. 11. 13.

[신준환의 꿈꾸는 나무](1)자연 속 식물이 나고 자라듯, 동의보감 속 ‘식물 지식’도 그랬으면…  신준환 | 전 국립수목원장
 
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은 동서고금 모든 사람의 꿈이다. 특히 의료체계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옛날에는 한번 아프면 늘 죽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한다지만 우리 조상들은 국민의 건강을 챙기는 데에는 세계를 선도했다.

특히 조선의 역대 왕들이 서민들의 약값 걱정과 궁벽한 시골의 처지까지 고려한 것은 그 시대 서양의 역사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조선 세종시대에는 <세종실록지리지>를 편찬하면서 향약(鄕藥)의 분포 실태를 조사하였고,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여 향약의 이름과 맛,

그리고 성질을 감별하는 기준을 마련하였다. 여기서 향약이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식물을 이용한 약을 뜻한다.

그 당시 중국이 의약 선진국이었지만 중국 약은 비싸 서민들이 이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향약의 연구에 국가적 역량을 기울였다.

이 땅에 나는 풀과 나무를 이용하여 우리 몸의 건강을 유지한다는 이런 발상은 이 땅의 자연과 얼마나 다양하고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지혜롭게 이용한 조상의 슬기에서 나온 것이다.


명종 임금은 신하인 김윤은과 유지번이 함께 만든 <황달학질치료방>에 대해 극찬한 후,

“궁벽한 시골의 백성들은 두루 구해보지 못할 것이니 감사 및 주부(州府) 등 큰 고을에서 인출하게 하여 경내의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면

그 치료 방법에 이익 되는 바가 많을 것이다”(김남일,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라고 하여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사정까지 걱정해주었다.
이런 정신은 조선의 역대 왕들에게 대부분 이어져 선조는 허준을 불러 “여러 의서들이 방대하고 번잡하니 그 요점을 가리는 데 힘쓰라.

가난한 시골과 후미진 마을에는 의사와 약이 없어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향약이 많이 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니

이들을 분류하고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이름을 함께 써서 백성들이 알기 쉽게 하라”고 하교했다. 허준이 물러나와 전문가들을 모아 관청을 세우고 자료를 모아 줄거리를 거의 정리하였을 때 정유재란이 일어나 안타깝게도 중단되고 말았다. 


선조는 다시 허준에게 하교하여 혼자서라도 책을 편찬하게 하였으나 그만 선조가 승하하여 그 책임을 지고 허준은 의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허준은 유배 중에도 편찬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아 마침내 <동의보감>을 완성하게 되었다.

<동의보감>은 180여종의 의서와 중국의 고전 80여종을 인용하고 있는데, 원래의 뜻을 해치지 않는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원문과 출처를 구체적으로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우리의 전통지식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하지만 책의 체제 구성의 독특한 철학적 의의, 인용 후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나간 형식, 그리고 많은 향약을 수록하고 한글로 식물 이름을 병기한 것을 볼 때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지식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허준은 옛사람들의 처방에 들어가는 약재의 양과 종류가 너무 많아서 가난한 집에서는 모두 갖추어 쓰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간추려 처방하기에 편하고 쉽게 만들었으며, 또한 향약의 경우 이름과 생산지, 채취 시기, 말리는 방법을 써놓았으니

갖추어 쓰기 쉬워서 멀리 구하거나 얻기 어려운 폐단이 없을 것이라고 <동의보감>의 ‘집례’에 밝혀놓고 있다.

특히 향약의 약 이름에 한글로 식물 이름과 부위를 밝혀놓아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배려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전통지식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사삼(沙蔘)이란 약재는 중국을 그대로 따르면 ‘잔대’라는 식물이 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덕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분자딸기의 경우도 과거에 미국에서 수입한 과즙을 써서 복분자 술을 담근 것은 가짜이고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것으로 담근 술이 진짜라는 논쟁이 있었지만

어차피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것도 미국에서 도입한 식물이라 정확히 말하면 우리 복분자 딸기가 아닌 것이다.

그 후 우리나라 자생 복분자딸기 나무를 재배하는 농가가 늘어났지만 <동의보감>은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동의보감>을 보면 한자로 ‘복분자(覆盆子)’라고 적어놓고 바로 옆에 ‘나모딸기’라고 적어두었는데,

이를 보면 복분자는 당시 산에 나는 나무딸기 종류를 모두 일컫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한약에서 말하는 복분자라 함은 지금 식물분류학에서 말하는 복분자딸기(Rubus coreanus)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라

산야에 자라는 모든 나무딸기 종류에서 다 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목학의 태두 이창복은 식물의 약성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복분자딸기가 아니라 곰딸기(Rubus phoenicolasius)를 최고로 꼽았다. 곰딸기는 일명 붉은가시딸기라고 하듯이 가지에 가시가 드문드문 있으며

붉은색의 샘털(한자로는 腺毛)이 빽빽하게 나 있고, 복분자딸기는 가지에 하얀빛을 띠는 백분(白粉)이 덮여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약재로 쓰이는 한국에 없는 중국 후박나무. 해발 300~1500m 산에서 자라는 목련의 일종으로 잎끝이 갈라져 있는 게 특징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전통지식에서 말하는 한약 이름을 지금 식물분류학적인 이름으로 일대일 대응을 시킬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나무딸기라고 하면 지금 식물분류학적으로 나무딸기라고 부르는 것뿐 아니라

복분자딸기는 물론 줄딸기, 붉은가시딸기, 가시복분자딸기 등을 모두 포함했을 것이다. 그래서 안덕균은 <한국본초도감>에서

한약 이름 하나를 써놓고 현대의 식물분류학적인 이름은 같은 종류를 모두 나열하고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사삼을 더덕이라고 하였지만, 많은 한의학자들은 사삼을 잔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덕균도 사삼을 더덕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며 사삼은 잔대, 가는층층잔대, 층층잔대, 둥근잔대, 넓은잎잔대, 털잔대의 뿌리라고 하였다. 
문제는 <동의보감> 같은 보물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나머지 전혀 비판할 수 없는 신성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필자는 <동의보감>도 과학적인 해석과 평가를 받을 때 우리에게 훨씬 더 큰 가치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조식제는 <특허로 만나는 우리 약초 1>에서 “더덕은 예로부터 인삼, 현삼, 단삼, 고삼과 함께 오삼 중의 하나로 불리며 약효를 인정받아 왔으며, 민간요법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산더덕은 특히 사포닌과 이눌린 등의 성분으로 인해 비위 계통과 폐, 신장 등을 보호하고, 거담, 해소, 강장, 해열, 건위, 해독의 효능이 뛰어나며, 필수 지방인 리놀레인산, 칼슘, 인, 철분 등이 풍부하여 뼈와 혈액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효과가 있다. 약명/이명은 사삼(沙蔘)/양유근, 통유초”라고 하였다.
위에서 든 문헌들을 종합해보면, 사삼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더덕과 만삼, 잔대는 각기 독특한 생화학적 성분과 특징을 가지고 폐와 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사삼이나 만삼은 인삼을 복용하면 부작용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좋은 효과를 낸다는 해설을 보면 다양한 체질을 지니고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의 건강관리에 좀 더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이 우리 땅에서 나는 약용식물을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 흥미롭기는 하지만 현대적인 시각에서는 곤란한 일도 발생한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었던 황자후는 의학에도 정통하여 세종 때인 1421년 명나라에 가서 조선에서 산출되지 않은 약재를 구해 돌아와 면밀히 비교검토한 후 단삼, 방기, 후박, 자원, 천궁, 통초, 독활, 경삼릉 등 8종은 중국산과 같지 않으니 사용하지 않도록 조치하였다(김남일,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이런 조치는 중국 약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많은 약재 중에서 8종 이외에는 우리 향약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향약의 이용을 권장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또한 우리 향약을 썼을 때 약성을 보장할 수 없는 문제를 피해서 치료 효과를 높이는 장점도 있다. 
그로부터 약 600년이 안되어 필자는 위에 쓰인 후박으로 인하여 혼란에 봉착하게 되었다. 1970년대 대학 시절, 수목학 시간에 우리나라 후박나무(Machilus thunbergii)는 녹나뭇과에 속하는 식물로 울릉도나 남서해안, 그리고 제주도를 위시한 섬 지방에서 자라는 것으로 배웠는데, 조경수 시장에서 목련과의 식물인 일본목련(Magnolia obovata)을 후박나무라고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 그 당시 일본 잔재 청산에 열을 올리고 있던 시대 상황에서 일본목련이 희귀하고 아름다운 후박나무로 오인되는 것을 본 필자는 일본목련은 낙엽활엽수이고 목련과이며 후박나무는 상록활엽수이고 녹나뭇과로 생물학적으로 유연관계가 완전히 다르다고 화를 내며 항의를 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공부를 더 깊이 해보니 필자의 지식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에서 본 중국에만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약재인 후박(厚朴)이 문제였다. 후박(Magnolia officinalis)을 공부해보니 중국의 해발 300~1500m의 계곡과 산지에서 자라는 목련의 일종으로 일본목련과 비슷하지 않은가! 한 수목원에서 중국목련이라는 이름이 붙은 후박을 찾을 수 있었는데 가까이 갈 때까지는 일본목련과 구별할 수 없었다. 바로 곁에 가서 잎을 보니 잎끝이 갈라져 있어 잎끝이 둥근 일본목련과 차이가 났다. 그래서 한동안 후박과 일본목련을 구분하기 무척 어렵지만 잎끝이 갈라지는지 아닌지로 구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산림치유를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후박에 대해 조사를 하다가 영어판 위키피디아를 보니 후박과 일본목련은 참으로 구별하기 어렵고 단지 열매의 끝이 둥글면 후박이고 뾰족하면 일본목련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더구나 처음에 잎끝이 갈라지는 것으로 식별했던 것도 부실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은 변종으로 자연 상태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재배되기만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아둔한 탓도 있겠지만 뭘 좀 안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그러니 나무를 쉽게 공부한다고 수목원에서만 관찰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수목원이나 식물원에서는 한곳에 여러 식물을 많이 모아놓으니 잡종이 생길 수 있다. 
물론 녹나뭇과 상록활엽수를 후박나무라고 부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라고 부르면 안될 것이다. 상록활엽수로 잎이 조밀하게 분포하고 있는 후박나무와 낙엽활엽수로 잎이 성글게 분포하고 있는 일본목련은 조경효과도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본초학 차원에서는 중국의 후박과 일본목련이 후박이다. 우리나라의 후박나무는 위품(僞品)일 뿐이다. 
우리가 쉽게 학제 간 연구니 통섭이니 하지만 이런 깊은 틈을 무시하고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사람의 건강이란 문제는 이제까지 생겨난 모든 학문이 관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필자가 건강을 지켜준 식물 이야기를 하면서 약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약효는 <동의보감>에서부터 각종 본초학 책에 엄청나게 많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인터넷에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몸에 좋다면 무조건 먹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많이 먹으려고 한다. 또 오래오래 먹으면 더 좋은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어떤 것이 몸에 좋다는 것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다. 좋다는 것은 어디에 좋다는 것이지 다른 것에는 나쁠 수가 있다. 특별히 더 좋다는 것은 특별히 더 독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위에 좋은 것은 간에 부담이 될 수 있고 간에 좋은 것은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몸에 좋은 것도 필요할 때만, 그것도 자격을 가진 전문가의 처방을 받아서 먹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