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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한국화가)

선유도

by 2mokpo 2015. 8. 21.

 

 

심사정의 '선유도'. 종이에 담채, 27.3×40㎝, 1764년, 개인 소장.
 
심사정(1707~1769)이 58세에 그린 '선유도'(1764)는 소재의 조합이 파격적이다.
격랑과 뱃놀이도 부자연스럽지만 뱃전의 서책·기물은 엉뚱하기 짝이 없다.
이는 그림이 현실의 풍경이 아니라 화가의 내면풍경임을 알려준다.

그는 이 심상치 않은 풍경으로 대체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어둠의 자식'이 그린 뱃놀이

물결이 으르렁거린다. 안개가 끼어 있다.

망망대해에 배가 한 척 떠 있다. 승선 인원은 두 명의 선비와 뱃사공이 전부다.

사나운 물결과 달리 배와 인물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신기하다.

이 정도의 격랑이라면 배를 띄워서는 안 된다.

선비들은 요동치는 물결에도 아랑곳없이 '관수(觀水)'중이다.

그들의 포즈는 서로 통하지만 수면의 상태는 극과 극이다.

요동치는 물결은 현재의 생과 겹친다.

그는 '어둠의 자식'이다. 역모에 연루된 할아버지 때문에 벼슬길도 막혔다.

한때 어진모사중수도감에 '감동'으로 추천되었으나 대역죄인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쫓겨난다.

타고난 재능으로, 20세 전후하여 겸재 정선에게 그림을 배운다.

생의 대부분을 산기슭의 초가에서 칩거하다시피 살며, 평생 붓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 산수, 인물, 화조 등 100여 점이 넘는 그림이 남아 있다.

그에게 그림은 칠흑 같은 생을 밝힌 유일한 등불이었다.

그렇다면 세찬 물결은 현재가 처한 가파른 삶의 조건을,

배는 그럼에도 초연한 삶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초연해지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번뇌에 시달렸을까?

날뛰는 물결과 무심한 인물의 대비가 섬뜩하다.

왜 서책과 기물을 배에 실었을까?

그림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무엇 때문일까? 배에 실어둔 기물 때문이 아닐까? 초옥은 배의 일부여서 괜찮다.

하지만 책상과 서책, 학과 늙은 나무, 매화가 꽂혀 있는 도자기, 술잔 등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튄다.

방 안에 있어야 할 물건이 야외에, 그것도 배 위에 실려 있다.

그림이 자연스러우려면 뱃전에 '콜라주'한 기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기물이 있다면, 그것은 화가가 기물을 특별히 생각한다는 뜻이 된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매화와 학과 관련된 고사다. 도자기에 꽂힌 꽃과 매화나무처럼 보이는 고목,

그리고 고목에 앉아 있는 학 등은 곧 임포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산속에 들어가 매화나무를 심고 학과 더불어 살았다는 임포는 탈속의 삶을 원하던 선비들의 '롤모델'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친구와 더불어 임포처럼 유유자적하게 살고자 하는 바람을 표현한 셈이 된다.

둘째, 조선시대에 양반들 사이에 유행했던 고동서화 수집과의 연관성이다.

중국산 골동품이나 희귀한 글씨와 그림 등이 주요 컬렉션 품목인 고동서화 수집 붐.

조선 초기 왕공사대부들의 개인적인 취미에서 시작된 고동서화 수집이 후기에 이르면 중인들에게까지 퍼져간다.

특히 18세기에 들어서면 수집벽은 유행처럼 확산된다.

당시의 몇몇 초상화를 보면 고동서화가 함께 배치되어 있곤 했다.

조선에서 구하기 힘든 고동서화를 그림에 넣어서 자기 과시를 한 것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또 있다. 귀한 고동서화를 그리되 '화제'는 소박하게 붙인다는 점이다.

가령 '흙벽에 종이로 창을 내고 평생 시나 읊조리며 살고자 한다'는 식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흙벽으로 된 초라한 집에서 값비싼 고동서화를 소장하다니, 말이 안된다.

화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고동서화를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쯤으로 이해해야 한다.

'서시' 같은 마음의 풍경화

'선유도'의 서책과 기물들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확산된 고동서화 수집열기를 염두에 두면, '선유도'의 서책과 기물은 예사롭지 않다.

더욱이 현재가 영조시대의 고동서화 컬렉터이자 대안목가였던 상고당 김광수, 석농 김광국, 사천 이병연,

그리고 정조시대의 표암 강세황 등과 교유했다는 점이다.

이들과의 친교는 그가 예술세계를 펴는데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만큼 "그들이 수장하고 있던 유명한 중국 서화, 조선 서화의 컬렉션이

현재 심사정으로 하여금 많은 예술적 자극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유홍준) 따라서 뱃전에 실린 엉뚱한 서책과 기물은 고동서화의 수집 붐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하겠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보면,

'선유도'는 '서시(序詩)' 같은 그림이다.

전망 없는 현실에서 고동서화를 벗하며 유유자적하겠다는 마음의 풍경화 말이다.

뱃전의 서책과 기물이 화두처럼 눈부시다.

(주)아트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