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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자연, 환경, 숲

나무와 숲, 그 만남의 의미

by 2mokpo 2014. 12. 19.

 

꿀벌과 꽃은 서로 도우며 사는 공생관계다. 이 세상에, 인간을 위해 피는 꽃은 한 송이도 없다. 꽃에게 인간은 벌과 나비보다 가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존재로 자연을 군림하고 있는가? 약탈자 내지는 폭군? ‘나무와 숲, 그 만남의 의미’는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현재적 삶의 생활양식이 우리의 내재적 삶과 자연에 어떠한 문제를 수반하고 있는지 생태 윤리적 관점에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이스터 섬의 교훈
불과 최근에 우연히 발견된 이스터 섬이 있다. 최근까지도 이스터 섬에 남아 있는 거대한 석상과 문화들은 외계인이 건설한 것이라고 여겼던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고립된 상태에 살던 사람들의 부족 간 경쟁으로 일순간에 사라진 흔적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부족 간 극심한 경쟁은 세의 과시를 위해 앞 다투어 거대한 석상을 제작하게 되었고, 더 크고 더 많은 석상을 만들기 위해 끝없이 많은 나무를 이용하게 되었고

마침내 숲이 사라지게 되면서 이스터 섬의 빛나던 문화도 사라지게 되었다.

숲의 파괴는 숲에 깃들어 살던 동물들의 멸종과 함께 인간도 살 수 없는 섬으로 만들어 버린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경쟁시대를 지나 경제의 무한경쟁시대에 사는 우리의 현재 모습은 자연과 함께하지 못하고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들로 자연을 파괴할 뿐 아니라

인간의 본질도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물질문명의 결과는 크게 두 가지의 상실을 현대인에게 가져다주는데, 이는 자연성과 인간성의 상실이다.

이스터 섬의 교훈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필요하다.

모두를 존중하고 모두에게 겸손해야 비로소 자신이 존중받고 행복한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일이다.

나무와 숲을 알려고 하는 것은 먼저 나무와 숲의 삶이 보여주는 모든 생물에 대한 겸손과 존중 그리고 배려하는 마음을 몸에 익히는 작업이다.

나무들의 소통
만개한 한 그루의 산수국이 있다. ‘예쁘다’ 내지는 ‘무엇에 이용될까?’란 생각 이전에 산수국과 같은 나무들은 ‘왜 꽃을 피우기 시작하며,

꽃에 색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이고, 향기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 타자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는 첫걸음이고,

비로소 배려하고 존중하고 그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맛보게 된다.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이유는 물론 후손을 남기고 번식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만큼 놀랍고 경이롭다. 자고로 곤충과 같은 타자와 소통을 하는,

소위 충매화의 나무들에겐 반드시 화려한 꽃의 빛깔이나 타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향기를 발산하는 것이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소통언어가 된다.

하지만 산수국과 같은 나무는 꽃의 빛깔도 꽃의 향기도 곤충을 자극할 만큼 꽃의 빛깔이 화려하지도 꽃의 향기도 자극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자신의 결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꽃받침을 변화시켜 마치 화려한 꽃잎처럼 변신을 시켜 자신이 필요한 곤충들을 유인하고야 만다. 시련을 극복할 줄 아는 놀라운 삶을 우리는 들여다볼 수 있다. 자연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의 생활사를 관찰하고 귀 기울이다 보면, 존재하는 어떠한 생명이든 간에 스스로 그들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식물, 한자리에 머물며 자라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생물. 동물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곳에서 일생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동물들보다 더욱 힘들지 모른다. 바로 그러한 시련 때문에 식물들은 놀라운 삶의 다양성을 보일 수 있는 변신의 천재들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나무나 식물들은 주어진 자연환경이 부족하든 과하든 간에 자신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살아온 생물들뿐이다.

부족함을 느끼고 과함을 느끼는 생물들은 모두 사라졌거나 사라져 가고 있는 멸종의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꽃의 다양한 빛깔과 모양 그리고 꽃의 다양한 향기들은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알맞은 곤충과 같은 매개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온 열정을 바친다. 화려한 빛깔과 향기가 없는 꽃들은 가능한 한 가장 작고 가장 가벼운 꽃가루를 만들거나 열매를 만들어 바람을 타고 먼 여행을 보낼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식물의 꽃과 향기는 빛깔과 향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곤충이나 다른 동물과 소통하기 위한 그들만의 언어수단이다.

곤충은 그들이 필요한 양분을 꽃으로부터 얻어내고, 꽃은 곤충으로부터 수분이 이뤄져 마침내 수정된다. 이들의 관계는 서로 먹거나 먹히지 않으려는 생존경쟁이 아니다. 꽃은 곤충에게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알로서의 ‘꽃’을 피워냈으며, 곤충은 꽃에 수분이 일어나게 해서 씨앗이 새로운 ‘꽃’을 피워낼 수 있게 해준,

서로서로 꽃을 피워 주는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유전자가 지속성을 담보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이처럼 식물과 동물과의 소통방식은 인간과 인간 내지는 인간과 다른 생물과의 소통보다는 더 오래된 자연의 유산이다.

그만큼 그들이 맺는 자연과의 소통방식은 훨씬 더 정교하고, 섬세하고, 이성적이란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소나무가 대략 1억 년을 살아오면서 멸종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물론 다양한 소나무의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땅속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심근성 뿌리의 발달이나,

추위에 견딜 수 있기 위해 침과 같은 잎으로의 변신을 도모하면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많은 지질 성분을 함유하게 된 것이라든지,

혹한 겨울에도 상황에 따라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등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나무는 다양한 유전자를 생산하는 것을 통해 강인한 후손을 기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소나무는 암술과 수술이 따로 피어난다. 많은 꽃은 꽃받침과 꽃잎 안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그렇지 않고 소나무처럼 각자 따로 독립해서 발달하는 꽃도 있다.    

소나무의 가지에 암꽃과 수꽃이 발달해 있는데, 가지의 위쪽에 암꽃이 아래쪽에 수꽃이 발달이 된다.

이는 같은 가지의 수꽃가루를 받지 않기 위한 소나무의 놀라운 선택이다.

소위 자가수분을 방지하기 위한 소나무의 선택으로 이웃하고 있는 소나무의 꽃가루를 받음으로 인해 유전적 다양성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자면, 소나무는 수꽃이 아래에 피고 위쪽에는 암꽃이 피어 있는 것은 타가수분으로 더욱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전략이다.

또한 암꽃과 수꽃의 피는 시기를 달리하여 자가수분을 최대한 피하려는 나무들의 노력은 오랜 세월을 살아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대기 중에 수없이 많은 다양한 나무의 꽃가루가 있음에도 각자의 고유한 페로몬 향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암술머리가 다른 꽃가루의 모양이나 크기와는 맞지 않게 발달되어 있어 서로 다른 꽃가루를 받아들이는 혼란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아울러 마침내 소나무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닿게 되어 수분이 되어, 암술의 씨방까지 이동을 하면, 비로소 수정이 이뤄지게 된다.

비로소 솔씨가 발생하면 약 18개월 동안 씨앗을 품고 있다. 이 기간은 추운 겨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자연적으로 씨앗이 냉동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솔씨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는 능력을 부모로부터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나무나 그 밖의 식물들은 소나무처럼 각자의 놀라운 지혜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꿀벌과 꽃은 서로 도우며 사는 공생관계다.
2.소나무의 암꽃과 수꽃
3.몸을 낮추어 꽃과 눈높이를 맞추는 아이의 모습
4.만개한 수국꽃
5.이스트 섬에 남아 있는 석상들 식물, 한자리에 머물며 자라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생물. 동물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곳에서 일생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동물들보다 더욱 힘들지 모른다. 바로 그러한 시련 때문에 식물들은 놀라운 삶의 다양성을 보일 수 있는 변신의 천재들이다.

   산림지 2013년 7월 : 글·남효창 (사)숲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