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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예의를 지켜라, 제발

by 2mokpo 2014. 9. 5.


예의를 지켜라, 제발
 
한겨레 신문에서 퍼온 글 입니다.등록 : 2014.09.04 20:35수정 : 2014.09.04 22:17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연 ‘세월호 가족대책위 농성 14일 차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추석 연휴에도 이곳에서 농성을 계속할 예정이다.


실험단식이니 폭식투쟁이니 하며
생사 기로 선 동료시민 조롱
이게 과연 인간의 나라인가
 참혹한 슬픔 비웃기라도 하듯
국정최고책임자는 유가족 외면
여당 국회의원은 유가족 향해
“예의를 지켜달라”
착각 말라, 그 말 유가족이 했어야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러는 것일까. 교황은 왜 초대했던가.

하기는 교황이 머무는 며칠 동안 우리들의 영혼은 약간이나마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황폐한 삶을 되돌아보고,

이웃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겸허한, 청빈한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것인가를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잘만 하면, 교황의 한국 방문은 이 나라에 뿌리깊이 서려 있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살풀이’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교황이 돌아가자마자 그의 메시지는 금방 잊혀지고,

다시 이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악마의 정신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려는 것처럼 온갖 무례하고 야만적인 언설이 난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혀내는 데 필요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혹독한 시련을 견디며 거리에서 날밤을 새우고,

목숨을 걸고 장기간의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유가족을 지금 이 나라의 ‘주류 사회’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라.


‘유민 아빠’가 마치 불순한 목적 때문에 단식을 하고 있다는 듯이 음해를 가하는 어용언론들의 저열한 짓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고 하자.

하지만 소위 ‘실험단식’이니 ‘폭식투쟁’이니 하는 괴이한 슬로건을 내걸고 생사의 기로에 선 동료 시민을 조롱하고 손가락질하는 야비한 작태는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새끼들을 어이없이 잃은 유가족의 참혹한 슬픔을 비웃기라도 하듯 면담신청을 간단히 거부하고 ‘민생’을 살핀다면서

자갈치 시장으로 행차하는 국정 최고 책임자의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다가 이 나라의 도덕적 기반이 이 정도로 무너졌는지,

이게 과연 인간의 나라인지, 절망적인 기분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물질적 이익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현대사회라고 하지만, 예의 바른 언행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인간답게 살자면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덕목이다.

예의는 물론 세계 공통의 보편적 가치라고 할 수 있지만, 동양의 문화전통에서는 특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수천년간 동아시아의 국가운영과 정치사상에서 핵심적 것은 “예의를 잃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신념이었다.

공자에게 인(仁)은 한마디로 극기복례(克己復禮)였다. 즉, 자기중심적인 정념과 욕망을 제어할 줄 알아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공자의 시대는 도덕의 기준이 철저히 무너진 시대였다.

조정에는 아첨꾼과 사기꾼이 넘쳤고, 시정에는 협잡꾼들이 우글거렸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란 ‘예’를 아는 자였다.

‘예’는 단지 겉모습을 부드럽게 꾸미는 형식적인 게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덕목이었다.

 비록 군주의 노여움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성심성의껏 자신의 신념을 표현해야 하는 게 군자다운 ‘예’라고 공자는 말했다.


여기서 케케묵은 ‘예’를 꺼내는 것은, 며칠 전 국회에서 유가족 대표와의 3차 회동이 결렬되던 자리에서 여당 국회의원이 했다는 말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자신들을 향해 불만을 터뜨리는 유가족들에게 “예의를 지켜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가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혹시 이 말 속에는 자신들은 ‘높으신’ 양반이다,

따라서 그에 합당한 예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라는 의식이 은연중 들어 있지 않았을까. 만에 하나라도 그랬다면, 착각도 유분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이란 국민의 대변자다. 그러므로 만약에 누가 누구보다 높고 낮다는 것을 굳이 가려야 한다면,

높은 분은 국민이지 국회의원들이 아니다. 실제로 그 자리에서 “예의를 지켜 달라”고 말했어야 할 사람은 여당 국회의원이 아니라 유가족 대표였다.
그럼에도 지금 모든 게 거꾸로 가고 있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의 명백한 과오 때문에 300여명의 아까운 목숨이 무참히 수장되었다.

그렇다면 이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토록 나라를 엉터리로 운영해온 사람들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조사 절차를 정하는 일을 이들에게 맡겨서는 안 되는 게 순리가 아닌가.


법적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여당 사람들은 사법체계의 혼란을 운위하고 있지만, 모든 법의 정당성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민주적 정당성에 달려 있다.

지금 양식있는 사람들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명쾌한 진상규명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성역 없이 조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우월한 민족적·도덕적 정통성을 가진 국가임을 입증하고,

대외적으로 최소한의 상식이 살아있는 나라임을 보여주려면, 국가의 최고 권력자라고 해서 조사 대상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진정으로 ‘내 나라’라는 기분 속에서 살고 싶다. 예를 들어, 덴마크 사람들은 자신이나 가족의 생일이면 현관에 덴마크 국기를 게양한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덴마크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개인의 생일을 자축하는 것은 자기 나라를 ‘내 나라’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덴마크인들의 이러한 ‘내 나라’ 의식은 덴마크가 부강한 나라여서가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 자기들 자신이라는 확신에서 온다는 사실이다.
지금 또다시 이 나라의 지배층과 어용언론은 상투적인 논리, 즉 ‘민생’과 ‘경제’를 위해서 이 국면을 끝내자고 대중을 현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이 경제를 위해서도 민주주의가 불가결한 시대임을 직시하고, 권력의 기만적 언어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이 나라를 정말로 ‘내 나라’로 만들고 싶다면 말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