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분노는 이 정부에서 지속될것 같습니다.

by 2mokpo 2014. 5. 1.

교사와 학교는 슬픔을 표해도 안 되는 것인가 / 정영훈

우리는 세월호 침몰로 학생들을 비롯한 꽃다운 생명들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가슴 찢어졌습니다.

 선박 회사와 선원, 그 회사를 비호해온 관계당국, 그리고 정부조직의 무책임과 무능력에 분노했습니다.
그 와중이었지만, 지난 4월18일은 우리 학교 4학년 현장학습일로 한달 전에 예정된 것이라 서울시청과 의회, 서울역사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침몰된 배는 구조되지 않고 기적이 가능한 시간이 다 지나가고 있어 속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학년부장으로서 다녀온 현장체험학습에 대해 정산하고 그것을 가정통신문으로 보내게 되어 있어 4월23일 문서를 작성해 기안을 올렸습니다.
“아름답지만 잔인한 4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생명들이 책임있는 사람들의 총체적 부실과 무책임, 무능에 의해 스러져가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사람들 또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와 정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다음날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수업 중 전화가 와서 침몰 관련 부분을 뺏으면 좋겠다 하셨습니다.

학교장 명의로 나가는 가정통신문에 정부의 책임을 언급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듯하여 수정했습니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절이 실감나는 4월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생명들이 스러져가는 가슴 아픈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도 교감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께서는 가정통신문은 학교장의 이름으로 보내는 것이라 교장 선생님의 뜻이 전달되도록 작성되어야 한다며,

 제가 기안한 가정통신문을 수정하여 ‘온화한 날씨 속에 꽃향기가 가득한 계절, 학부모님 가정에도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식으로 수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교장 선생님의 이름으로 나가지만, 담당자의 이름도 있고, 실제적으로 통신문은 담당부장이 만드는 것이며,

제 머리말(인사말)은 아무 문제 될 내용이 아니다”라고 했으나 끝내 그 가정통신문을 낼 수 없었습니다.
중간에 지역교육청 과장님으로부터 교장 선생님 말씀을 따라 달라는 전화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통신문 머리말 부분을 읽어드리면서 아무 문제 될 게 없는 내용임을 말씀드리고,

교장 선생님께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 달라 부탁했으나 효과가 없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민감한 시기에 어떠한 말이나 글이 다르게 해석되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며 ‘신중하게 작성해야 한다.

좀더 간단명료하게 작성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수학여행 가던 사랑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지도교사들과 함께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만 듣고 기다리다 수장되어 그 후 구조되지 못한 상황에 대해,

모든 교사와 학교는 기회가 닿는 대로 가슴 아파하고 더 나은 사회와 나라를 위해 의견을 내며 변화 발전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조차 차단하고 삭제한다면 이 교육과 사회와 나라에 획기적인 발전과 희망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영훈 서울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
한겨레 신문 2014 0501 왜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