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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모셔온 글 모음, 어록

제 아내는 교사입니다.

by 2mokpo 201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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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내는 교사입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칩니다.
2년 전 아내는 하루라도 사고를 치지 않으면 천지가 뒤엎어지는 줄 아는 천방지축 중3 아이들의 담임이었습니다.

퇴근 후 저녁 시간이면 아내와 저는 그날의 사건사고들의 내용을 이야기하며 수습 방안을 세웠죠.

마치 뒷담화 하듯이….
1학기 내내 제가 아내의 반 아이들 이름을 거의 외워갈 즈음,

아내에게 아이들은 ‘사고뭉치 웬수들’에서 ‘그래도 내 새끼들’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퇴근 후 대화 내용도 팔꿈치 안으로 굽는 소리만 해서 아이들에게 괜한 질투도 생겼지요.
그리고 졸업식. 아내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다며 저에게 강의를 요청했습니다.

학생상담이 저의 일이고 이미 반 아이들을 대부분 알고 있는 터라 개인별 특성에 맞추어 어렵잖게 강의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 제목은 ‘꿈’이었습니다.


2년 후, 내 앞에서 꿈에 대한 강의를 듣던 그 아이들이, 그중 열한 명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혹은 아직도 저 차디찬 바닷속에서 턱밑까지 차오르는 실낱같은 숨을 마지막처럼 그러모으고 있을지 모릅니다.
싸늘한 채로 먼저 올라온 아이들은 숨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그렇게 놓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었는지 손가락은 모두 골절돼 있었습니다.

한 학생은 아빠가 옆집에서 빌려, 찔러 넣어준 2만원이 젖은 채로 주머니에 고스란히 접혀 있었습니다.

영정 앞에서 오열하던 또다른 아버지는 작아서 살이 비어져 나온 아이의 교복을 더는 보지 못하고 수학여행 참에 새것으로 장만해주었다고,

지갑도 새로 사서는 혹시 사고날지도 모르니 학생증 꼭 넣어다니라고 했답니다.

그 ‘혹시’가 오늘 자기를 피 토하게 만든다고 다시 피를 토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꿈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에디슨과 코코 샤넬과 김연아와 이승엽 그리고 마틴 루서 킹 목사의 꿈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했습니다.
졸업하는 이즈음 여러분들 꿈을 갖자고, 품은 꿈을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그때 그렇게 새빨간 거짓말을 해댔습니다.

이제 막 한마디 매듭하고 새로운 시작을 앞둔 푸르디푸른 아이들 앞에서 기성의 입으로 언감생심 사기를 쳤던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꿈을 가지라고 떠들어대 놓고는 정작 그 여린 꿈들을 키울 기회조차 주지 못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검증되지도 않은 말들을 천연덕스럽게 해댔습니다.

어른들의 막장 아수라 속에서 저는 지키지도 못할 똑같은 내용의 선내 방송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정말이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하지 마세요. 저와 이 어른들을….
이을렬 /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한겨레 왜냐 면에서  2014.04.30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