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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난 시간 --/읽다가·서평 모음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중에서----세바스티앙 살가도

by 2mokpo 2011. 11. 1.

 

살가도의 책이나 전시회를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항해 하다 보니 한가지 공통점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그를 소개하는 구절이 거의 다 똑같았다는 점이다.

 활동하고 있는 사진저널리스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사진가라는 평이었다. 이구 동성으로 그를 칭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바스티앙 살가도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예로 드는 사진은 브라질의 한 금광광산에서 찍은 일련의 작품들이다.

사람들은 그 사진을 보면서 마치 지옥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질 당시를 현대에 재현한 것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5만 여명의 광부들이 온통 진흙을 뒤집어 쓴 채 무거운 흙더미를 어깨에 메고

사다리를 올라가며 한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광경을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혹시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촬영을 위한 엑스트라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그의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1944년 브라질의 어느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난 살가도는 사웅 파울로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전공한 뒤

우익군사정권에 반대하다 프랑스로 망명을 갔다.

 

그곳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커피협회에서 일을 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아프리카의 커피 재배를 돕기 위해 방문했다가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프리카인들 모습을 보았다.

 

건축을 전공한 아내가 아파트를 찍기 위해 산 사진기를 빌려 가지고 간 살가도는 경제학자로 보고서를 써서

그들의 참상을 알리는 것 보다는 사진을 이용 세상과 의사 소통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1973년부터 직업을 아예 사진가로 전환하고 파리에 본부를 둔 시그마 대행사에서 일을 했다.

1979년 매그넘 사진 대행사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사진 저널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의 최초 사진 집은 라틴 아메리카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또 다른 아메리카1977년부터 83년까지 작업한 결과를 책으로 펴냈다.

세계최고의 부를 누리는 북아메리카에 있는 미국과 가난에 찌든 농민들이 대부분 살고 있는 남아메리카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이 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유진 스미드 기금으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그가 받은 수많은 상의 시작에 불과 했다. 프랑스, 미국, 영국, 스페인 등 각국으로부터 50여 개의 상을 받았던 것이다.

 

1984년부터 1985년 아프리카의 사헬Sahel 에서 찍은 사진을 모아 책으로 낸곤경에 처한 인류사진 집은

 더욱더 저널리스트로서 그의 지위를 확고히 해주었다.

 

그곳에서 살가도는 국경 없는 의사회회원들과 더불어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나 내전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인을 취재하면서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엔이나 세계의 유수의 자선단체에서 아프리카인들을 돕기 위해 원조금이 나오지만 온전히

그들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기타 다른 잘 사는 나라로 다시 흘러 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예를 들어 국제기구에서 나온 기금 2천만 달러 중 12백만 달러는 미국의 농부에게 곡물 값으로 가고,

 4백만 달러는 미국공군에게 운송비조로 가게 되어 결국 미국 경제만 도움이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장기적 해결책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고

 땅에 떨어진 곡물을 주워 먹게 하여 일시적인 배고픔만 면하게 해주고,

그 생활에 익숙한 아프리카인의 자존심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살가도의 사진에 드러나는 피사체의 존엄성은 그의 작업 태도에 기인한다.

 다른 매체들이 아프리카의 사헬의 기아를 취재하기 위해 짧게는 두 시간에서 길게는 2틀 정도 머물렀던 것에 비해

그는 몇 주씩 그곳에 살면서 현지 사람들을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단 한 순간의 보도나 잡지 몇 쪽을 장식하는 기사거리 용도로 생각하고 작업에 임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힘든 삶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좋은 사진이 나왔던 것이다.

 

가령 자동차를 갖고 다니면 일이 훨씬 수월하지만 그는 현지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

 언제나 버스를 타고 다녔고 사진을 다 찍은 다음에도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하루 열 여섯 시간씩 인화에 전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