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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한국화가)

김명국(눈 속에 길 떠나는 선비)

by 2mokpo 2009. 9. 5.

 

김명국 [金明國, 1600(선조 33)∼1663이후]

 

조선 중기의 화가. 인물·수석(水石)에 독창적인 화법을 구사했는데,

굳세고 거친 필치와 흑백대비가 심한 묵법(墨法), 날카롭게 각이 진 윤곽선 등이 특징이다.

본관 안산(安山). 자 천여(天汝). 호 연담(蓮潭)·국담(菊潭)·취옹(醉翁). 일명 명국(命國). 도화서(圖畵署) 화원을 거쳐 사학 교수를 지내다가

1636년(인조 14)과 1643년 두 차례나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김명국은 그 이름 석자보다도 <달마도>라는 그림으로 더 유명한 조선중기 화가이다.

 

                      그의 호인 '취옹' (醉翁: 술 취한 늙은이) 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와 마치 술 취한 상태에 서 울분을 토해내듯

     아무 거리낌없이 그어내린 이 그림을 통하여 그가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아웃사이더였음을 이끌어 내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 그는 신분제도가 엄격 하였던 조선시대에 양반이 아닌 국가에 고용된 일개 환쟁 이 에 지나지 않았으며

소위 성리학이라는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관념을 지배하던 상황 속에서 그가 주업으로 삼았던 그림 은 더군다나 하찮은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 자신의 천재를 술로써 달랬던 김명국의 생애와 그림은 어떠 하였을까?

 

김명국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조차 확인할 수 없다.

1600년 태생으로 씌어 있는 책이 있지만 그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 신분제에 동요가 생기면서 소위 중인 계층이 역사의 무대에 부상하 게 되고 영 정조 문예부흥기를 맞이하여

문예 전반에 활기가 돌면서 그림이나 음악에 재능이 풍부한 그러나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해 기인(奇人)으로 살다간 사람들의 전기가 대거 쓰여지면서

그는 당대에 받지 못한 평가를 받게 된다.

 

즉 그는 그 이전 어떤 대가 도 받지 못한 "신필(神筆)" 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게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 술은 창작의촉매제였다. 훗날 그를 신품(神品)으로 극찬하였던 남태응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노인 부분 확대                                             부인(여자)부분 확대

 

 금방이라도 폭설이 쏱아질 것 같이 하늘이 흐린날, 한사람이 나귀를 타고 길을 떠난다.

하필 날씨도 좋지 않은 날 길을 떠난 노인네가 걱정이 된듯 사립문에 기대어 멀어져 가는 님을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