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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자연, 환경, 숲

4.나무의 능력,숲의 힘

by 2mokpo 2009. 6. 24.

나무란 낱말은 독립적으로 보면 나무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접두사가 붙지 않으면 어딘지 어색하다. 나무보다는 고유명사인 소나무, 참나무, 잣나무 하면 듣기에 편하다. 나무는 땅에 홀로 또는 무리지어 산다. 이 땅에 사는 수천 종의 나무는 각각 고유의 이름을 갖고, 같은 종의 나무라 할지라도 인간처럼 생김새와 자람새가 다르다. 나무가 존재하려면 땅속에 뿌리를 깊게 내려 지상부에 잘 버티고 있어야 하고 뿌리가 빨아올린 양분과 수분을 나뭇잎에 공급해서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몸집을 크게 불리고 병충해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환경이 좋으면 나무 스스로 잘 견딜 수 있으나 환경이 나빠지면 잘 보살펴야 한다. 나무는 단독으로 서 있을 경우 환경의 압력을 많이 받으므로 조심해서 어루만져야 한다. 뿌리와 지상부가 균형을 이루고 튼튼하면 인간에게 한없는 혜택을 주는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면 나무의 능력은 무엇일까?

먼저 가로수를 보자. 자신은 뜨거운 햇빛을 받으면서 우리에게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살신성인의 자세를 갖춘다. 빛을 받을수록 더욱 건강해져서 그늘을 크게 한다. 나무는 자동차나 공장에서 내뿜는 오염물질을 정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잎이 무성할수록 나무가 건강할수록 능력이 배가된다. 나무는 도시미관을 살린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시드니는 나무 속에 집이 있는 건지, 집앞에 나무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무가 많다.

나무는 자연재해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선조의 지혜 덕분에 집 주변 산자락에 오래된 감나무와 돌배나무가 있으면 여름철 산사태가 나더라도 흙더미가 나무 때문에 비켜간다. 뿌리가 땅속 깊숙이 박혀 웬만한 흙은 방어할 수 있다.

나무는 영성을 얻는 곳이다.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신격화된 나무 아래 제사를 지내거나 장사를 지낸다. 동구밖 정자나무에서는 모임을 갖고 사막에서는 이정표의 역할도 한다.

나무가 모여서 숲을 이루면 환경을 지키는 힘이 더욱 커진다. 나무로 인하여 숲이 되지만 숲에는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생물과 무생물이 존재하여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이루고 나아가 생물의 보금자리가 되며 생의 환희가 시작되는 곳으로 변한다. 숲은 우리 가슴을 장밋빛으로 채워주며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숲이 가장 큰 생활환경 지킴이로 떠오른 지 10여년에 불과하지만 공익적 가치는 인간의 잣대로 계산해도 50조원을 넘고 숲이 자람에 따라 계속해서 가치가 증가한다. 비록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미명 아래 매년 7,000ha의 숲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생활환경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도시에서는 나무심기가 우선하는 정책으로 추진된다.

숲은 미래의 귀중한 자원인 목재를 생산한다. 우리 숲은 산에 서 있는 나무를 부피로 환산했을 때 ha당 70㎡로 일본의 2분의 1, 독일의 4분의 1, 스위스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나무만 서 있고 비싼 목재감은 거의 없다.

나무의 나이를 보면 30년생 이하가 전체의 68%로 한창 자라고 있어 적당하고 집중된 숲가꾸기가 따라준다면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좋은 나무를 얻을 수 있다.

숲은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몸과 정신을 즐겁게 한다. 숲의 모습은 계절에 따라 크게 변한다. 잎이 막 나기 시작하는 봄에 차를 타고 가면서 멀리서 보면 포근한 느낌을 주는 동산 숲은 남쪽 사면에 짙은 연두색을 띠며 자연의 수채화를 그린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은 무표정하지만 숲은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산허리와 산등성에는 낡은 겨울옷을 벗어버리고 봄옷을 입은 낙엽송, 척박한 땅에서 꿋꿋이 녹색을 지키는 리기다소나무, 그 사이로 뾰족이 얼굴을 내민 신갈나무, 앙증맞은 작은 잎을 내어 바람에 살랑거리면서 가을 단풍과는 다른 누런색을 피어내고 있는 넓은 잎나무들. 보면 볼수록 여성다움을 느끼게 하고 한없는 부러움과 사랑을 갖게 한다. 산의 등줄기를 봉긋봉긋 이룬 연록의 경관 사이에 혼자 돌 틈에 서 있는 소나무가 오히려 제멋을 찾지 못한다. 여름숲이 주는 느낌 또한 다르다. 강릉에서 속초로 가는 무더운 여름해변 여행 길에서 청량감을 주는 것은 산쪽에 있는 붉은 줄기의 소나무와 해변쪽의 잎이 길며 뻣뻣한 곰솔이다. 그 숲의 경치는 풀과 작은 나무들이 무질서하게 서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풍요롭다.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어도 자연 속에 있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고 현실 속에서만 있으면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 둘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다. 숲은 많은 비가 내릴 때 물을 저장하고 있다가 서서히 흘러내려 보내므로 강을 채우고 생명수를 공급한다. 많은 비가 내릴 때는 홍수가 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나무의 능력과 숲의 힘은 숲가꾸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발휘된다.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숲을 가꾸면, 경제가 어느 시점을 지나면 탄력을 받아 고속으로 성장하듯 우리 숲도 크게 성장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숲에 관한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누구든지 숲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숲을 가꾼다면 여기에 우리 행복과 미래가 있다. 나무와 숲은 아무 말도 없이 우리에게 1,000가지 혜택을 주면서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다.

〈이천용 국립산림과학원 임지보전과장〉 출처 경향신문 : 2004 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