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1808년 5월 3일》
정식 원제 (스페인어): El tres de mayo de 1808 en Madrid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
영어 제목: 1808년 5월3일(The Third of May 1808)
별칭: 《프린시페 피오 언덕의 총살》 (Los fusilamientos de la montaña del Príncipe Pío)
제작 연도: 1814년
소장처: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작품의 핵심 특징 및 의미
이 그림은 미술사에서 가장 혁명적이고 강력한 반전(反戰) 회화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주제: 나폴레옹 전쟁 당시, 스페인을 점령한 프랑스 군대가 마드리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구성의 혁신:
중심 인물: 흰 셔츠를 입고 두 팔을 벌린 남자는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시키며, 무고한 희생자를 상징합니다.
빛의 사용: 바닥에 놓인 등불이 학살당하는 시민들을 비추며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반면 가해자인 프랑스 군인들은 등을 돌린 채 어둠 속에 있어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폭력을 나타냅니다.
미술사적 의의: 전쟁을 영웅적으로 미화하던 기존의 역사화와 달리, 전쟁의 잔혹함과 비극을 적나라하게 고발하여 근대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이나 《게르니카》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게르니카
〈게르니카〉(스페인어: Guernica)는 최종국면 당시 독일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1937년 4월 26일 24대의 비행기로 폭격하는 참상을 신문으로 보고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다. 나치 독일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며 250~1,600명 그 이상의 사람들(대부분 민간인)이 사망하였고 또 부상 당함
거대한 벽화의 형상을 띤 이 그림은 사실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의 스페인 전용관에 설치되도록 스페인 정부가 피카소에게 의뢰한 작품이었다. 그림은 사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수년 전에 의뢰된 것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게르니카의 참상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폭격의 공포와 피카소가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 근본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독재 체제에 대해 엘리트로서 느꼈던 비애도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크기는 349.3 X 776.6 cm 이고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에 소장 되어있다.
그림에는 부상당한 사람들과 절규하는 사람들 등이 그려져 있으며, 전쟁의 참상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한국에서의 학살
위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1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한국전쟁 중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참혹한 현실을 담은 반전(反戰) 미술작품이다. 피카소는 실제로 한국을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유럽 언론을 통해 전쟁 소식을 듣고 이를 라마틱한 화폭에 담았습니다.
크기는 가로 약 210cm, 세로 110cm 크기의 합판에 유화로 그려졌으며, 왼쪽에는 벌거벗은 여성과 아이들이 무방비 상태로 몰려 있습니다. 이들은 두려움과 절망에 휩싸여 있으며, 생명의 위협을 직감하는 표정과 자세가 강렬한 슬픔을 전합니다.
오른쪽에는 철갑 투구를 쓴 군인들이 총과 칼을 들고 위협적으로 이들을 겨누고 있습니다. 투구를 쓴 병사들은 중세의 기사와 같은 갑옷을 입었지만 그 모습은 기계화되고 무자비한 전쟁의 도구로 변형된 것을 상징합니다. 이 대립 구도는 전쟁의 인류 파괴성과 무자비한 폭력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한국에서의 학살』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학살의 주체가 명확히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작품이 반공주의와 반미주의의 대립, 그리고 역사 해석의 분쟁 속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 작품이 미군의 학살 행위를 고발한다는 해석과 함께, 북한군이나 한국 내 극우 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등 다양한 이슈가 연계되면서 정치적 분쟁거리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국제전쟁과 폭력에 저항하는 피카소의 꾸준한 반전 메시지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전시가 금지되기도 했으나, 2021년 국내 최초로 공개되어 대중과 비평가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인류 보편의 평화를 웅변하는 이 작품은, 피카소가 단순한 예술가를 넘어 인류의 고통과 정의를 표현하는 사회적 목소리였음을 보여줍니다. 작품 속 아이, 임산부, 여성들의 비참한 표정과 군인의 무자비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전쟁의 폭력성과 희생, 기억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자료출처 : 제미나이, 위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