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자녀 부부가 말했다 “왜 아이 안 낳냐면요”
정부와 지자체는 무자녀 부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내놓고 있다. 정관 복원 시술비 지원부터 산후조리용 한약 할인까지 각종 ‘창의적인’ 지원책을 내놓는가 하면(〈시사IN〉 제851호 ‘지자체의 작은 곳간, 출산 대책이 버겁다’ 기사 참조), 주택청약제도를 개편해 신생아 특별·우선 공급 물량을 풀었다.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에게 기존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더해 선택지를 늘려 당첨 확률을 높여준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유자녀 가구에 쓰는 만큼 무자녀 부부에게는 일종의 ‘채찍’인 셈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7년 차 무자녀 기혼 여성 이혜인씨(32)는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을 ‘엉뚱한 프로모션’에 비유했다. 마케터인 그는 잠재적 고객들에게 물건을 팔고자 할 때 기업에서 쓰는 가장 쉬운 전략을 정부가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업체에서 구매한 이력이 없는 잠재 소비자들에게 5000원 할인쿠폰 같은 것을 보내거든요. 정부의 일회성 현금 지원책들이 비슷한 것 같아요. ‘100만원 줄 테니까 한번 낳아봐.’ 그런데 아이는 반품도 환불도 안 되는데 그런 홍보가 효과가 있을까요? 무엇보다 그 브랜드가 비교우위의 가치가 있어야 계속 사고 싶어지잖아요. 이 전략은 결국 브랜드가 매력이 있어야 통하는 거죠.”
이씨는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아이를 낳기에 매력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남편하고 ‘1000억원이 생긴다면 아이를 낳을까’ 하는 이야기를 해봤는데, 그러면 제가 아이를 낳을 것 같더라고요. 이민 갈 수 있는 돈이잖아요. 저한테 한국은 성실하게 노력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남들 가진 만큼 갖고, 남들 하는 만큼 하면서 살아야 한다’라는 압박감에서 평생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 같아요. 이런 삶이 저한테도 버거웠는데 아이는 다르게 살게 해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더라고요.”
서울에 거주하는 결혼 10년 차 무자녀인 정윤영씨(44) 역시 같은 이유를 들었다. 정씨의 경우, 남편이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뜻을 먼저 밝혔지만 본인 역시 동의했다. “입시학원에서 논술 강사를 오래 하면서 다양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지켜봤어요. 한국에서는 부모가 해줘야 하는 일이 정말 많더라고요. 아이를 1등으로 만들어줘야 하고, 완성된 인생을 살게 해줘야 하고요. 그런 삶은 제가 지향하는 게 아닌데도 결국 그런 분위기에 휩쓸릴 것 같더라고요. 남편하고 ‘애가 없으니까 우리가 같이 산다’는 농담도 해요. 양육 과정에서 수많은 결정과 고민이 있었을 텐데 끊임없이 이견이 생겼다면 지금처럼 우리답게 살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이들에게 한국은 ‘한번 살아보니 남에게도 권하고 싶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닌 셈이다.
자녀를 가지든 가지지 않든,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추구하며 더 나은 삶의 전망을 그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인생을 계획한다. 정윤영씨는 “결혼 후 내가 제일 잘한 일은 아이를 갖지 않은 것과 첫째 강아지를 입양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런 제안을 덧붙였다. “만약 출산을 망설이는 무자녀 부부를 설득하고 싶다면, 정부가 저출산 지원책을 제시하거나 노후 빈곤에 대한 두려움만 강조할 게 아니라 ‘아이를 낳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우선일 거다. 그게 가장 좋은 ‘영업’ 방법 아니겠나.”
midnightblue@sisain.co.kr 87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