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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 사조 명화/매너리즘

엘 그레코(El Greco)

by 2mokpo 2023. 3. 13.

그리스 태생의 에스파냐 화가로 17세기 르네상스 말기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의 궁중 화가였고 당시 매너리즘으로 분류된 그의 화풍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화풍은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에는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1588, 캔버스에 유화)

이 작품에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스테파노가 오르가스 백작의 시신을 매장하고 있고 그의 영혼을 천사가 천국으로 끌어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묘사였다. 특히 동시대 인물이 아닌 사람들을 동시에 묘사한 것, 영혼을 실체있는 형상으로 표현한 것 때문에 당시 백작의 유해를 모셨던 산토 토메 성당에서는 이 그림을 묘지 위에 걸기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그 그림을 보기 위해서 산토 토메를 찾는 관광객이 매우 많아진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이 그림중 백작의 시신이 그려진 부분이 1940년 스페인 페세타 지폐 도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1590~95년경, 캔버스에유체, 마드리드 프라도美術, 312×169cm

 

이 그림은 그리스도의 수난도로서 초현실적인 그림이다. 십자가 양편에 떠있는 천사는 물론이고 지상인으로 좌우에 각각 서 있는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또한 꿇어 앉아서 십자가를 붙잡고 흐르는 피를 닦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까지모두가 천국에 연속되어 그리스도의 수난을 중심으로 일체가 되어 있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도를 천상으로 상징시키면서 지상의 사람들이 천국으로 향하는종교적인 동경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사람의 비통함과 동시에 천상으로 향한 영적인 희망을 표정과 동태()로서 상징시키고 있다.

신 위주의 사람이라는 중세를 끝맺게 한 르네상스의 합리주의와 물질주의의 미술을 수업한 엘 그레코는 이 그림에서 새삼 중세기 미술의 표현 방법을 답습하고 있다. 명암의 동태 등의 기법이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현세를 벗어난환상적인 세계로 화면을 신비화시키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비잔틴 미술이 감정의 차도(差度)를 색으로 상징시키듯이 엘 그레코는 지상과 천국을 잇는 길을 빛에 비추이는 비장한 표정과 천상을 향한 탈세적 (脫世的)인 동태로 연속시키고 있다.

성가정과 성 안나, 1595, 캔버스에 유체 127×106cm

 

르네상스 미술에서 애호받던 소재를 다룬 것으로 인간적인 모정과 종교적인 경건한 표정을 성모자를 통해 보여 주는 그림이다. 성가족이란 사랑을 상징하는 종교적 집단이며 신자들의 가정 생활의 이상적인 상이기도 하다. 이 그림에는 마리아의 모친인 성 안나가 제3자로 끼어 있으면서 성가족의 계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표정에서는 밝은 면보다 불안과 슬픔의 인간적인 표현을 볼수 있으며 동시에 경건한 종교적 성격이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자세에 나타나 있다. 엘 그레코의 화면 구성의 특징은 어느 한 초점을 정해 놓고 그것을 둘러싸는 표현 방식인데, 이 그림에서도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세 사람의 손이 둘러싸면서 서로 연결되고 있다.

엘 그레코, 1577, 캔버스에유체, 마드리드 프라도美術. 118×70.5cm

이 작품은 작가가 스페인에 귀착한 후 처음 제작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서 토레도시의 성 도밍고 성당 제단화의 일부이다. 명제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신체 인성부 성자, 성신으로 신의 삼위를 뜻하는 것이다.

화면 상부에 있는 비둘기가 성신의 표상으로 보여지고 있고, 성부는 그리스도의 유해를 무릎 위에 놓고서 엄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비통한 이장면을 둘러싸고 있는 천사들의 표정은 비애에 차 있으며 이같이 육체의 죽음을애통해 하는 것으로 물질 세계와 영혼 세계의 종교적 연관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작가는 자신의 종교적 신앙으로 영적 세계의 차원을 초현실적인 영상으로 구체화하고 있고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정신은 멀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유해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 <삽도)의 그리스도상을 연상케 한다.

엘 그레고, 성 안드레아와 성 프란체스코, 1603년경, 켄버스에유체 167x113cm

 

화면의 좌측에는 X자 형의 십자가에 순교한 예수의 12사도의 한 사람인 성 안드레아가 있고 우측에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생을 마친 성 프란치스코가 보인다. 이상하게도 작가는 1세기 사람인 성 안드레아와 13세기의 성인을 한자리에 모아 이마를 맞대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엘 그레코의 창조적인 의사공간 이라면 십자가를 중심으로 서 있는 두 성인의 공통된 영적인 종교관에서만 가능하였을 것이다. 자의 동작이나 모습에는 의도적으로 강조된 동적인 기미가 있으며, 길게 늘인신체는 후기 르네상스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매너리즘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이 그림은 엘 그레코의 만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하게 지적할 만한 점은 작가의 서명이다. 화면 우측 하부 끝에 고문서()가 바닥에 떨어져 있듯이 놓여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작가의 서명이며 그의 원명인Dominikos TheotocopoulosJ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서명까지도 그림의 한 구성 요소로 취급한 작가의 작품관이 여기서 또한 주시된다.

엘그레코,그리스도의 부활, 1595~1608년경, 캔버스에유체,마드리드 프라도美術館, 275×127cm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그림에서는 부활의 장면이 묘소의 석관에서 일어나는 상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리스도가 승천하는 것 같은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점은 맨 그레코의 상상력에 따른 표현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환을 죽음에 대한 종교적인 영적 세계의 승리이며 동시에 영원의 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작가가 구상한 결과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의 길을 알려 주는 평온한 성자의 모습으로 승리의 기를 들고 초연하게 보여지고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무덤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의 모습은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서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병사들의놀라는 표정이 다양함은 작가의 인체를 통한 느낌의 표현이 다각적임을 실감케 한다. 또한 하나하나의 병사가 놀라움의 동태로 군상이 되어 한덩어리로 나타나 보이는 것은 상과 표정의 일치에서 나온 것이다. 이 군상은 부활하는 그리스도를 초점으로 하고 있다.

엘 그레코,, 오순절 1600~05년경,캔버스에 유체 275×127cm, 마드리드 프라도美術館

1541년 그리이스의 칸디아에서 출생한 거장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빌시대를 배경으로 자라났다. 그는 25세 때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수련하였으며 티치아노를 따르고 베로네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틴토레토의 영향 또한 받았음이 그의 극적인 감정 표현에서 보여진다. 색채감이 예민한 그의 재석은 베네치아 화파에서 연유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이 그림은 원숙한 시절의 작품으로서 성경의 사도행전에서 발췌하여 묘사한것이다. , 예수의 부활과 승천 후 50일째 되던 날 성모를 중심으로 사도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성령이 강림하여 신앙심을 굳게 하여 사도들이 복음을 전도하게 된다는 기적으로 기독교의 종교화 중에서도 중요한 화제 이다.

작품에서 볼 때 극적인 표정은 육감적인 것도, 화면의 동적인 장식을 위한 것도 아니고 다만 종교적인 신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도들의 동태는 종교적인 경건함이나 감각적인 놀라움이 아닌 정신적인 충격으로 나타나 있고 이러한 신비성은 밝음과 어둠을 대응시킨 색채 대조에서 강조되고 있다. 사도들 중 우측 두 번째에 있는 흰 수염의 사도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함, 1579목판에,  57.8×34.8cm 

한 폭의 그림 속에 천당과 속세와 지옥이 각기 보이고 있음과 동시에 이 세세계가 연결된 종교관이 상징되고 있다. 화면 아래쪽 가운데에 검은 의상을 입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인물은 당대의 스페인 왕 필리페 2세로서 하늘을 향한 경건한 그의 신앙심을 표출하고 있다.

현실적인 지상의 인물들과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관련시키고 있는 점은 종교관에 입각한 것이나 이것을 시각화한 결과는 환상이나 초현실적 상황으로나타나고 있다. 이 그림은 당시 스페인의 국가적 종교관이 절대적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특색으로 지적되어야 할 점은 각기 차원이 다른 세 세계가 동적인요소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한 구원의 신앙을 천국과 지옥이라는 대조적인대상으로 연관시켜 총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엘 그레코, 죽음에 대해 명상하는 성 프란체스코와 레오, 108 *66cm

엘 그레코는 성 프란체스코를 그림의 소재로 즐겨 다루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성자에 관한 감동적인 면은 멀리하고 명상에 잠겨 있는 성자의 세계를 선택하여 구상하였다. 성 프란체스코의 수도 생활은 교회가 본보기로 보여줄 수있는 참다운 신자의 길이었으며 특히 당시 반종교개혁 운동을 전개하고 있던교회로서는 중요한 신앙 생활의 예시였다. 이 작품이 보여 주듯이 죽음에 대한 명상은 엘 그레코의 깊은 종교관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작가 자신이 착상한 주제이며 또한 종교적 도상(圖像)이기도하다. 엘 그레코에겐 같은 주제와 같은 구도로 된 작품이 40여점이나 되었다. 이것은 당대 스페인의 종교열이 어느 정도였나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무릎을 꿇고 손에 든 개골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은 죽음의 상징 앞에서 생의 허무를 절감하는 성자의 수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성자를 따르며 도를 닦고 있는 레오 역시 죽음 이상의 영적인 세계를 위한 명상을 하고 있다.

컴컴한 동굴을 위쪽에서 비추는 광선은 죽음의 어둠에서도 영적인 빛나는 세계가 있음을 상징한다. 이 그림에는 구도적인 배경이나 공간적 구성은 없으며, 채색 역시 이 작품의 정신적인 내용에 부합하여 검은 색과 갈색, 빛의 흰색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성전의 정화, 1595, 캔버스에 유 106.3×129.7cm

극적이며 종교적인 이 작품은 앤 그레코의 화가로서의 형성 과정과 그 시대의 사회 배경을 간접으로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에이르기까지 유럽에는 반종교개혁 정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엘 그레코는 그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수학하고 1577년 스페인에 정착하여 활동했다.

영혼의 구제 장소인 성당 내에서 상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추방하는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반종교개혁 시대와 그 정신에 알맞는 소재였다. 왕권이 가장 강하고 반종교개혁에 대해 최대의 추진력을 행사했던 스페인의 시대적 종교정신을 앤 그레코는 종교화로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신비주의경연을 녹색으로 삼고 있으며 이것을 인물의 격심한 동태와 극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화면 구성, 색채와 명암의 강한 대조 등으로 반영하고 있다. 성서에"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리리라 했는데 너희들은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만들었다는 신약성서 (마태오 2113)의 기록에 의거한 그림이다.

엘 그레코, 성 베드로와 성바울로캔버스, 121.5×105cm,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지

엘 그레코는 그리스도의 12사도를 주제로 일련의 사도화()를 즐겨 그렸다. 특히 사도 베드로와 바울로를 함께 그린 작품은 여러 점이나 된다. 12사도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인 이 두 사도를 그림으로 시각화할 때는 작가의 표현능력이 문제시되는데, 엘 그레코는 고증 자료로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참고로 하여 양자의 사도로서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선 베드로의 소박하고 명상적인 성품과 바울로의 정열적이며 능동적인 기질이 각기 그림 안에 반영되고 있다. 바울로는 설교를 위한 성서에 한 손을 놓고 긴장된 표정과 열띤 눈동자로 그의 적극적이고 정열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옆에 있는 베드로는 대조적으로 깊은 사색에 잠겨 어려운 길을 타개하는 심각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자세히 보면 베드로의 손에는 열쇠가 쥐어져 있다. 이것은 베드로, 너의 위에 교회을 세울 것이고 천국의 열쇠는 너에게 맡긴다(마태오 1618~21) 라는 예수의 말을 반영시키고 있다. 두 사도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각기 그 사명과 성품을 독특하게 보여준 엔 그레코의 창조력이 이 작품의 감상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무덤
참회하는 성 베드로(ca. 1590-1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