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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E.H 곰브리치)

1.신비에 싸인 기원​선사 및 원시 부족들 : 고대 아메리카

by 2mokpo 2023. 1. 16.

1.신비에 싸인 기원

선사 및 원시 부족들 : 고대 아메리카

 

우리는 언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만약에 우리가 미술이라는 말이 사원이나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거나 문양을 짜는 것과 같은 행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 세상에 미술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반면에 미술이라는 단어를 어떤 종류의 아름다운 사치품, 박물관이나 전람회에서 진열되는 어떤 것 또는 화려한 응접실을 꾸미는 값진 장식품 같은 어떤 특별한 물건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미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과거의 많은 건축가나 화가, 조각가들은 그런 것들을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건축과 관련시켜 생각해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있고 또 그 중에는 진정한 예술 작품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세워진다.

원시인들에게는 실용성에 관한 한 집을 짓는것과 상()을 만드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들의 오두막 집은 비바람과 햇볕으로부터,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만들어낸 정령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형상도 자연의 힘처럼 현실적으로 여기는 다른 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림과 조각은 주술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처럼 미술의 신비한 기원을 이해하려면 원시인들이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실용적위력이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게끔 만든 체험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9세기에 스페인의 한 동굴 벽화에서 (도판 19), 그리고 프랑스 남부의 동굴에서 벽화 (도판 20)가 발견 되었을 때 고고학자들은 빙하 시대에 이처럼 생동감 있고 살아 있는 듯한 동물 그림을 인간이 그렸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점차 이들 지방에서 돌과 뼈로 만든 조잡한 도구들이 발견되면서 들소와 맘모스와 순록 같은 짐승들을 사냥하여 그 짐승들을 대단히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그 벽화들을 정말로 끄적거렸거나 채색했다는 사실을 점차 확인하게 되었다.

 

미술가들의 작품 대부분은 이상한 의례에서 일익을 담당하도록 만들어졌으며 그때에 문제가 되는 것은 조각이나 그림이 우리의 기준으로 보아 아름다우냐가 아니라 그 작품이 효력을 발생했느냐, 다시 말하자면 그 작품이 수행하게 되어 있는 주술을 제대로 해냈느냐 하는 것이다.

19 <들소> 기원전 15,000-10,000년경, 동굴 벽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20 <>, 기원전 15,000-10,000년경, 동굴 벽화, 프랑스 라스코 동굴

이들 원시 사냥꾼들은 그들의 먹이를 그림으로 그리기만 하면 -아마 그들은 창이나 돌도끼를 가지고 그림 속의 동물을 공격했을 것이다-실제로 동물들이 그들의 힘에 굴복할 것으로 생각했다.

 

21 프랑스 라스코 동굴 천장에 그려진 동물들, 기원전 15,000-10,000년경

 

원시 미술은 이처럼 미리 정해진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만 늘 알아볼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 어떤 부족의 장인(匠人)들의 고도로 숙련된 솜씨는 참으로 놀랄 만한 것이다. 우리가 원시 미술을 논할 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원시'라는 단어가 이들 미술가들의 재능이 미개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반대로 이러한 원시 부족들은 조각이나 바구니 짜는 일, 가죽 손질이나 금속을 다루는 일 등에 정말로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이 얼마나 간단한 도구로 만들어졌는가를 알게 되면 수백 년 동안의 전문화 과정을 거친 이들 장인들의 인내력과 확실한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뉴질랜드의 마오리 족 (Maori)은 목각에서 (도판 22) 정말 경이적인 경지를 개척해왔다. p44

22 <마오리장족의 집에 장식된 상인방>, 19세기 초, 목각, 32 x 82 cm, 런던 인류 박물관

 

우리의 것과 다른 것은 그들의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그들의 착상인 것이다. 처음부터 이것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미술의 모든 역사는 기술적인 숙련에 관한 진보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에서는 원시 미술가들이 자연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유럽의 대가가 만든 가장 원숙한 작품만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수십 년 전에 나이지리아에서 다수의 청동 두상(頭像)이 발견되었는데 그것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신빙성 있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도판 23). 

23 <흑인 청동 두상>, 나이지리아 이페에서 출토, 족장의 상()으로 추정, 12-14세기, 청동, 높이 36cm, 런던 인류박물관

 

도판 24는 폴리네시아 (polynesia) 사람들이 오로 (Oro)라고 부르는 '전쟁의 신' 상이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우수한 조각적 재질을 갖고 있으나 그 조각 작품이 정확하게 사람의 모습을 표현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잘 짜여진 섬유로 뒤덮인 꼰 끈으로 뒤덮인 나무 조각에 불과하다. 이 작품에서 눈과 팔은 섬유로 꼰 끈으로 대충대충 표현돠었지만 일단 우리가 주의를 집중해서 보게 되면 그 꼰 끈으로 인해 그 기둥은 불가사의한 마력을 가진 것같이 보이게 된다. 우리는 아직도 미술의 영역에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위의 낙서 그림의 실험에서 뭔가를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24 <전쟁의 신 오로>, 타히티에서 출토, 18세기, 나무에 신네트를 씌운 것, 길이 46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도판 25는 뉴기니 (New Guinea)의 한 가면 이다. 이것은 아름답지도 않고 또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이것은 마을의 청년들이 유령으로 분장하여 여자들과 아이들을 놀라게 해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유령이 우리들에게는 매우 환상적이거나 불쾌하게 보일지라도 이 원시 미술가가 유령의 얼굴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일단 만족스럽다.

25, <의식용 가면>, 뉴기니의 파푸아만에서 출토, 1880년경, 나무와 나무껍질 및 식물상 섬유, 높이 152.4cm, 런던 인류 박물관(현재는 영국박물관이 소장)

 

도판 26은 전면에 세 개의 소위 토템 기둥을 가진 북미 북서부에 살던 인디언 <하이다(Haida) 족 주장의 집> 모형이다. 우리에게는 흉측한 가면들의 잡동사니로만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이 기둥이 그들 부족의 오랜 전설을 설명해준다. 그 전설 자체도 그 전설의 표현만큼이나 우리에게는 이상하고 조리에 맞지 않겠지만 인디언들의 생각이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에 더 이상 놀랄 필요는 없다. p49

 

26 <하이다(북미 북서 연안 지대의 인디언) 족 추장의 집>, 19세기 모형, 뉴욕 미국 자연사 박물관

 

고대 아메리카의 위대한 문명 중에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그들의 '미술'이다. 내가 미술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들 신비스러운 건물과 조각상들이 아름다움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중의 일부는 대단히 아름답다- 이러한 것들이 즐거움이나 '장식'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현재의 온두라스(Honduras)에 해당되는 코판(Copan) 유적의 제단에서 발견된 죽은 사람의 머리 조각은 산 사람을 제물로 맞추는 이 종족의 종교의식을 설명해준다 (도판 27). p50

 

27 <죽음의 신의 머리>, 마야 족의 돌제단에서 출토, 500-600년경, 온두라스 코판, 37 x 104cm, 런던 인류사 박물관

 

28 알라스카의 <의식용 가면> 1880년경, 채색 목판, 37×25.5cm, 베를린 국립 미술관, 민속 미술관

 

고대의 페루 인들은 어떤 그릇들을 사람의 머리 형상으로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은 실물과 꼭 닮았다 (도판 29). 이러한 문명 들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작품들이 우리들에게 생소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인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관념 때문일 것이다.

29 <애꾸눈 사나이 머리 모양의 토기>, 페루, 치카나 계곡에서 출토, 250-550년경, 점토, 높이 29cm, 시카고 미술연구소

 

도판 30은 멕시코가 스페인에 정복당하기 이전의 마지막 시대인 아즈텍 시기로 추정되는 조각 작품이다. 학자들은 이것이 틀라록(Tlaloc)이라는 이름을 가진 비()의 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열대지방에서 비는 사람들에게 생과 사의 문제일 때가 많다. 왜냐하면 비가 오지 않으면 그들의 작물이 말라죽고 그들도 굶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와 뇌우의 신이 그들의 마음속에 무섭고도 강력한 수호신의 형상을 취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늘에서 치는 번개가 그들의 상상으로는 커다란 뱀과 같이 보였기 때문에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방울뱀을 신성하고 막강한 존재로 생각했다.

 

30 아즈텍의 <비의 신 틀라록>, 14-15세기, , 높이 40cm, 베를린 국립미술관, 민속미술관" 해당 그림의 도해

 

우리는 이 신비스러운 원시 미술의 기원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우리가 미술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림과 문자는 매우 밀접한 혈연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바위에 부족의 토템인 주머니쥐의 무뉘를 그리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