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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자연, 환경, 숲

초식동물 사라지면 아카시아도 가시버린다

by 2mokpo 2014. 10. 24.

 

 

임팔라의 포식자 회피행동이 먹이 식물에 영향 끼쳐

맹수 없는 열린 초원에는 임팔라 꺼리는 가시 아카시아 번창

 

기다란 가시로 무장한 아프리카 아카시아의 한 종. 포식자가 없어 초식동물이 많은 곳에 이런 아카시아가 많다. 사진=A. T. Ford


초식동물은 느긋하다.

일시적인 꽃이나 열매를 찾아 헤매거나 죽기 살기로 달아나는 먹이를 잡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어디에나 풀과 나뭇잎이 널려 있다.

 

여기에 생태학자들 사이의 오랜 논란거리가 있다.

초식동물이 먹이 걱정 없이 뜯어먹는데도 식물이 풍부하게 살아남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포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어 견제한 결과라는 가설과 식물의 자기방어 덕분이란 가설이 맞섰다.

최근엔 두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다.

식물이 뜯어먹히지 않으려면 가시나 독성물질 같은 화학적 방어수단이나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무서운 포식자가 있는 곳을 삶터로 골라야 한다는 얘기다.

 애덤 포드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동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17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관계를 처음으로 실험으로 규명했다.

 

연구진은 동아프리카 대초원에서 가장 흔한 초식동물인 영양(임팔라)과

주요 먹이인 아카시아, 그리고 포식자인 표범과 야생 들개(리카온)를 대상으로 연구했다.

 

 

아프리카 대초원의 대표적인 초식동물인 임팔라. 사진=A. T. Ford
 

임팔라는 포식자가 숨기 좋은 덤불 숲을 꺼렸다.

대신 버려진 농장처럼 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바닥에 풀이 깔려 포식자가 은신하기 곤란한 곳에 많이 모였다.

덤불을 제거했더니 임팔라가 늘었다.

실험 결과 포식자가 숨기 쉬운 덤불은 임팔라에 전기 철조망과 비슷한 효과를 냈다.
그런데 이런 포식자 회피 행동은 먹이인 식물에 영향을 끼쳤다.

임팔라가 좋아하는 아카시아 나무에는 2종이 있다.

하나는 가시가 0.6㎝ 이하여서 잎을 뜯어먹기 쉬운 종이고

다른 하나는 가시 길이가 6㎝나 돼 잎을 먹으려다 자칫 찔리기 십상인 종이다.

 


아프리카 대초원에 있는 두 종의 아카시아 왼쪽이 가시가 적은 종(Acacia brevispica)이고

오른쪽은 가시가 큰 종(Acacia etbaica)이다. 사진=A.T. Ford 외, <사이언스>  


임팔라는 가시가 작은 쪽을 선호해, 가시가 긴 종보다 40%나 더 자주 잎을 뜯었다.

연구진이 가시가 긴 아카시아에서 가시를 떼어내 가시가 작은 아카시아에 붙이는 실험을 했더니

애초 거들떠보지 않던 긴 가시 아카시아에 덤벼들었다. 
이처럼 임팔라가 가시 작은 아카시아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아카시아는 임팔라가 꺼리는 덤불 숲에 많았다.

반대로 임팔라가 선호하는 열린 초원에는 가시가 긴 아카시아가 많았다.

5년 동안 임팔라의 접근을 차단한 초원에서는 작은 가시 아카시아는 늘고 가시 긴 아카시아는 주는 결과가 나왔다.

 


 » 임팔라의 포식자인 리카온(야생 들개). 사진=Dustin Rubenstein

 

이 연구는 초식동물의 위험 회피 행동과 식물의 초식동물 방어전략이

식물 군집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사람도 이 미묘한 균형에 개입한다.

버려진 목장은 임팔라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지만

사람이 포식자를 제거하면 가축을 밤에 가두어 지킬 필요가 없어져

애초 목장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연구진은 “세계적으로 대형 포식자 수가 꾸준히 줄고 있어

포식자가 핵심 생태계 과정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이해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논문에서 지적했다.

포식자가 사라지면 초원에는 가시 많은 나무만 들어찰지 모른다고 논문은 밝혔다.

 


한편, 포식자와 식물의 상호관계를 규명한 이 연구는 울릉도 특산식물인 섬나무딸기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애초 육지의 산딸기가 울릉도에 옮겨져 진화한 이 식물은 포식자가 없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가시를 버리고 대신 잎과 꽃의 크기를 키웠다.

흥미롭게도 섬나무딸기를 고라니가 있는 육지에 다시 옮겨심었더니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가시가 생겼다.


한겨레신문에서 :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